삼성-LG전자 ‘믹스 마케팅’ TV한국 이끌다

  • 입력 2009년 7월 16일 02시 57분


배불뚝이TV도 유지… 선택 폭 넓혀
日업체의 ‘선택과 집중’전략 압도
美 매장선 ‘매출 증대 효자’ 대접

10일(현지 시간) 오후 미국 뉴저지 파라무스. 미국 최대 가전유통점인 베스트바이 매장은 고객들로 북적였다. 이곳에서 TV의 각종 기능을 시연할 수 있어 최고 명당으로 꼽히는 ‘엔드 캡(end-cap·각 전시라인의 통로 쪽 맨 끝)’에 전시된 TV 중 절반이 삼성전자와 LG전자 제품이었다.

이만희 삼성전자 뉴저지법인 차장은 “베스트바이 직원들에게서 ‘삼성전자 덕분에 매장 매출이 올랐다. 고맙다’라는 인사까지 받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TV 판매량이 크게 늘면서 블루레이 플레이어, 홈시어터 등 주변기기와 가전 액세서리까지 덩달아 잘 팔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삼성전자는 이런 성과에 힘입어 9월부터 미국 전역 베스트바이의 900개 매장 내 일부 공간에서의 디스플레이 권한도 일임받았다. 유통업체가 디스플레이 권한을 제조업체에 주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메이드 인 코리아’, ‘메이드 인 저팬’ 압도

올해 상반기(1∼6월) 세계 TV시장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가 ‘메이드 인 저팬’을 누를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세계 TV시장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선전해왔지만 일본 업체들은 소니 샤프 파나소닉 도시바 등 글로벌 브랜드가 많아 전체 점유율에서는 한국을 앞서왔다.

한국 TV 경쟁력이 강화된 것은 경기 불황에 대한 시장 상황을 정확히 예측해 고가+저가, 액정표시장치(LCD)+플라스마 디스플레이 패널(PDP) ‘믹스(mix) 전략’을 구사한 덕분. 현지 소비자들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준 것이다.

한국 기업들은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집에 20∼30인치의 ‘세컨드 TV’ 수요가 늘 것으로 보고 중소형 TV 라인업을 갖췄다.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에서 일명 ‘배불뚝이 TV’(브라운관 TV)를 판매하는 전략도 그대로 유지했다. 또 중국과 인도 등 신흥국에서는 현지인의 구매력 증가로 브라운관 TV에서 LCD TV로 ‘갈아타기’ 수요가 많아질 것으로 보고 마케팅을 강화했다. 유럽에서 LG전자의 32인치 LCD TV는 지난해 4월 출시한 지 11개월 만에 판매 대수 100만 대를 돌파해 ‘밀리언셀러’가 됐다.

특히 제품을 ‘빨리, 다양하게’ 내놓는 스피드 마케팅도 한국 기업의 강점이 됐다. LG전자는 미국에서 총 30개 모델을 쏟아냈다. 최준혁 LG전자 과장은 “제품 라인업이 그나마 강하다는 소니는 20인치대 제품이 거의 없고 신제품은 20개 안팎에 그친다”고 말했다.

LCD, PDP 동시 공략도 주효

일본 업체들은 LCD TV와 PDP TV를 두고 ‘선택과 집중’의 전략을 썼다. 샤프나 소니는 LCD TV, 파나소닉은 PDP TV에 주력한 것. 반면 한국 업체들은 PDP와 LCD TV로 시장을 한꺼번에 공략하는 ‘쌍끌이 전략’을 구사했다. LCD나 PDP 가격이 절반으로 떨어지는 데에 불과 1년 걸리는 등 시장 변동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다. 그 결과 LCD 판매 비율이 월등히 높아진 최근 양쪽 진영 TV를 출시한 한국 기업들은 시장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가격 출혈 경쟁의 유혹을 물리치고 브랜드를 프리미엄급으로 관리한 것도 주효했다. 미국 베스트바이에서 판매되는 삼성전자의 46인치짜리 LCD TV는 1799.99달러(약 230만 원)로 일본 소니 제품과 가격이 똑같다. 예전에는 한국 제품이 경쟁사 제품보다 저렴하기 때문에 잘 팔린다는 얘기가 있었지만, 이제는 이를 완전히 뒤엎고 기술력과 제품력 등으로 승부수를 띄우는 셈. LG전자는 월마트나 코스트코 등 할인율이 높은 대형할인점에는 아예 납품하지 않는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현지 공장에서 만드는 데다 가격도 거의 비슷하게 책정하기 때문에 원화 가치 하락에 따른 환율 효과보다는 기술력 향상 등 TV 산업 체질이 강화된 데에 따른 판매 증가가 많다”고 설명했다.

부품 경쟁력이 ‘TV 한국’ 뒷받침

제품 수직계열화도 한국 TV의 경쟁력에 한몫했다. 삼성전자는 내부에 LCD사업부를 두면서 LCD를 자체 공급받는다. 또 LCD 패널의 핵심 부품인 유리기판을 만드는 삼성코닝정밀유리 등 다양한 부품 계열사도 있다. LG전자 역시 LG디스플레이에서 LCD를 조달한다. 수직계열화되지 않은 일본 업체들에 비해 급변하는 시장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여지가 더 크다는 지적이다.

이성준 SK증권 애널리스트는 “대만 LCD 업체들은 유리기판이 부족해 공장 가동률을 더 올리지 못하고 있다”며 “전략을 잘 세워서 적극적으로 대응한 것이 한국산 TV가 약진하는 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고 말했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파라무스=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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