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젠테이션 속 3P, 시장을 유혹한다

  • 입력 2009년 7월 7일 02시 56분


지난달 15일 싱가포르 창이전시센터. 삼성전자의 새 휴대전화 ‘제트(JET)’를 소개하기 위해 발표자가 무대 중앙에 섰다. 스크린에 일반적인 프레젠테이션 화면이 나올 거라 예상한 청중은 발표자가 갑자기 손을 들어올리자 환호하기 시작했다.

손의 움직임에 따라 홀로그램을 이용한 3차원(3D) 입체영상으로 제트폰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발표자의 손짓 한 번에 휴대전화 영상이 허공에서 나타나고 사라졌다. 손으로 입체영상 속의 휴대전화를 조작하며 제품의 주요 기능을 보여줬다. 미래사회를 다룬 영화 ‘마이너리티리포트’를 연상시키는 장면이었다. 8분 동안 진행된 이 퍼포먼스는 입체적인 이용자환경(UI)을 내세운 제트폰에 대한 깊은 인상을 남겼고, 이는 200만 대 선(先)주문이라는 큰 성공으로 이어졌다.

○ 프레젠테이션은 시장에 대한 기업의 프러포즈

기업이 새 제품을 내놓으면서 시장과 소비자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는 ‘프러포즈’인 프레젠테이션에 공을 들이고 있다.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를 끼워 넣는가 하면 첨단기술을 적용하기도 한다.

삼성전자는 이번 제트폰의 공개 방법을 놓고 오랜 고민 끝에 홀로그램을 선택한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의 이날 프레젠테이션은 적외선 센서와 특수 카메라로 사회자의 동작을 인식하는 제스처 센싱 기술과 홀로그램 연출을 접목해 만들었다. 팔을 뻗는 등 미리 약속된 17가지 동작을 입력 신호로 삼아 영상이 변하도록 했다.

또 3D 영상은 일반적인 수준보다 5배 밝은 빔 프로젝터를 천장에서 무대 바닥에 쏜 뒤 반사된 영상이 앞으로 45도 숙인 폭 10m의 투명 스크린에 맺히도록 하는 방식으로 제작됐다. 이를 기획한 디지털 디자인 업체 디스트릭트의 차서령 홍보팀장은 “디자인과 첨단기술을 결합한 프레젠테이션으로 제트폰의 등장부터 세상의 주목을 받게 하자는 것이 목표였다”고 말했다.

○쇼맨십 강한 퍼포먼스로 눈길 끌기

LG전자도 올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아레나폰 등을 공개하는 발표회를 열면서 안승권 MC사업본부장(사장)이 시계 모양의 워치폰으로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의 최고경영자(CEO)인 스티브 발머 씨와 즉석에서 화상통화를 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또 LG전자는 최근 발광다이오드(LED) TV 신제품을 선보이면서 경쟁업체인 삼성전자의 TV와 나란히 세워놓고 화질을 비교하는 공격적인 퍼포먼스도 펼쳤다.

이 밖에 이희성 인텔코리아 사장은 새로운 PC용 반도체 발표회 때 가죽점퍼를 입고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를 몰고 행사장에 등장하는 쇼맨십을 보여 좌중을 놀라게 했다. KT는 공기업 이미지를 깬다며 신제품 발표회를 갤러리 등에서 하는 파격을 선보이기도 했다.

○ 프레젠테이션에 숨어 있는 기업의 의도

기업의 퍼포먼스는 단순히 눈길을 끌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약점을 보완하거나 강점을 드러내는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삼성전자가 제트폰의 프레젠테이션에 큰 공을 들인 것은 이 제품이 ‘프레젠테이션의 귀재’인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에 대항하는 제품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더 나은 프레젠테이션으로 아이폰을 넘어서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보였다.

LG전자의 LED TV 화질 비교 퍼포먼스는 ‘삼성전자보다 LED TV 출시는 늦었지만 품질에선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또 휴대전화 발표회에 발머 CEO를 등장시킨 데는 그의 명성을 활용하면서 MS와의 협력관계를 은근히 자랑해 브랜드파워를 과시하기 위한 의도가 깔려 있다.

대우일렉의 올 4월 드럼업2 세탁기 발표회에선 회사의 경영상황을 상세히 설명하는 보기 드문 광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이성 대우일렉 사장은 신제품 발표에 앞선 인사말에서 사업구조조정에 대한 설명을 먼저 해 신제품 발표회장인지 구조조정 발표회장인지 헷갈리게 했다. 이는 사람들의 관심사를 먼저 설명해주고 안심을 시킨 뒤 신제품 소개를 받아들이도록 하겠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설명이 많다.

김용석 기자 nex@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