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레이 만들면서 CT기기는 못 만들어서야…”

  • 입력 2009년 6월 26일 02시 51분


문창호 리스템 사장은 “앞으로도 꾸준히 고부가가치 의료기기 국산화에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리스템은 국내 X레이 시장의 80%를 점유하고 있는 대표적인 ‘강소기업’이다. 사진 제공 리스템
문창호 리스템 사장은 “앞으로도 꾸준히 고부가가치 의료기기 국산화에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리스템은 국내 X레이 시장의 80%를 점유하고 있는 대표적인 ‘강소기업’이다. 사진 제공 리스템
리스템이 생산하는 의료기기 중 신체의 모든 부위를 찍을 수 있는 다목적 X레이 진단기기인 클라스캔. 사진 제공 리스템
리스템이 생산하는 의료기기 중 신체의 모든 부위를 찍을 수 있는 다목적 X레이 진단기기인 클라스캔. 사진 제공 리스템
방사선 의료기기 국산화 40년 문/창/호 리스템 사장

“CT장비 개발 실패했지만 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죠
아들에게 해외영업 일임…100년 기업 일굴 겁니다”

“저의 선친은 1960년대 X레이 국산화에 성공했습니다. 그로부터 40여 년이 지났는데도 컴퓨터단층촬영(CT) 장비조차 국산화하지 못한 것은 좁게는 저 자신, 크게는 국내 의료기기 산업의 문제라고 봅니다.”

병원에서 건강 검진을 받을 때마다 빼놓지 않고 접하는 의료기계가 있다. 흔히 ‘X레이’라고 부르는 여러 종류의 방사선 의료기기다. 자주 보는 의료기기지만 이 중 80%를 강원 원주시의 중소기업인 리스템에서 생산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리스템의 지난해 매출은 230억 원. 모두 방사선 의료기기 한 품목에서 나왔다. 이 회사 문창호 사장(56)은 “비록 X레이 진단기기 시장은 국내 업체가 장악하고 있지만 고가 장비는 여전히 외국회사 몫”이라며 “바닥부터 다시 시작해 CT장비 등 고가 장비 국산화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 실패해도 다시 도전한다

리스템은 문 사장의 부친인 문명화 씨가 1960년 대전에서 창업한 ‘동아엑스선기계공업’에서 출발했다. 당시만 해도 미군 부대에서 폐기처분하는 X레이 진단기기를 수리한 후 다시 파는 수준이었다. 회사는 그런 열악한 상황에서 X레이 국산화에 성공해 이후 국내 의료기기 업계의 대표적인 기업이 됐다. 본사도 대전에서 인천을 거쳐 2005년부터 강원 원주에 터를 잡았다.

리스템은 2004년 디지털 X레이보다 한 단계 높은 기술이 필요한 CT장비 개발에 성공했다. 하지만 시장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어렵게 개발한 기술이 모두 사장됐다. 문 사장은 “5년이 걸려 CT 장비를 국산화했지만 그 사이 정보기술(IT)과 접목한 기술이 발전해 시장에서 더는 우리가 개발한 제품이 사용되지 않았다”며 “세계적으로 발전한 한국 IT업체와 협력해 다시 한 번 CT 장비에 도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 사장이 의료기기 국산화에 매진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국산 제품이 나와야 전 세계적인 인지도를 가진 글로벌 기업의 제품 가격도 떨어진다는 것. 디지털투시촬영장비(LISDR), 수술용 투시촬영장치(C-arm) 등 리스템이 개발한 모든 제품은 수입대체효과를 냈고 이 공로로 지난달 ‘자랑스러운 중소기업인’ 상을 받았다. 그는 “그동안 국산 의료기기 개발에 성공한 제품은 수입 단가가 40∼60% 떨어졌다”며 “의료 장비는 여전히 개척할 것이 많은 분야”라고 말했다. 국산화는 수출로 이어졌다. 리스템은 지난해 세계 50개국에 1000만 달러(약 128억 원) 수출 실적을 기록했다.

○ 3대를 잇는 ‘한우물’ 중소기업

리스템은 이제 3대 경영에 나선다. 문 사장의 장남인 문상진 씨는 현재 리스템 해외사업팀장을 맡고 있다. 영업에 약한 중소기업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일찍부터 국제경영학을 전공하고 회사의 해외 영업을 전담하고 있다. 문 사장은 “엔지니어가 되겠다는 걸 만류하고 경영학을 시켰다”며 “100년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경영과 마케팅이 필요할 것으로 봤다”고 말했다.

리스템은 2007년 중소기업중앙회가 ‘우수 가업승계기업’으로 선정할 정도로 가업 승계에 모범적인 기업으로 꼽히고 있지만 ‘중소기업 가업승계’에 대한 본격적인 공론화는 분명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문 사장은 “주위에 회사 문을 닫고 기업을 ‘현찰화’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가업승계를 포기한 경우”라며 “세금을 납부하고 나면 경영권 지키기가 쉽지 않아 차라리 회사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량으로 자본을 투입하는 것보다 핵심 기술로 오래 유지하는 ‘강소(强小)기업’이 유리한 업종이 많습니다. 최소한 중소기업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독일이나 일본처럼 100년이 된 중소기업도 나오지 않을까요.”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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