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걷고있을 때 터키는 뛰고 있었다

  • 입력 2009년 6월 10일 02시 51분


《“폭스콘(Foxconn)이 마케도니아에 새로운 PC 생산시설을 짓기로 했습니다. 최종 서명만 남았답니다.” 터키투자공사(ISPAT)의 알파슬란 코르크마즈 사장은 지난해 말 한 국제회의에 참석했다가 이런 정보를 입수했다. 폭스콘은 메인보드, 그래픽카드 등 PC부품과 데스크톱 PC를 생산하는 대만 회사. 코르크마즈 사장은 곧바로 폭스콘에 연락했다. 무상에 가까운 조건으로 공장용지를 제공하고 각종 세제혜택을 주기로 약속하며 터키에 공장을 짓도록 권유했다. 폭스콘에 PC를 주문 생산하는 미국의 휴렛패커드(HP)까지 설득했다. 결국 폭스콘은 올해 3월 마케도니아가 아닌 터키에 6000만 달러(약 756억 원)를 투입해 연간 20만 대의 PC를 생산하는 공장을 짓는다고 발표했다.》

■ 터키 세계무역박람회 르포

강력한 ‘개방 드라이브’ 성과

외자유치 5년간 10배 급증, GDP도 17위… 한국에 두계단 차

이는 외국인직접투자(FDI)를 유치해 경제를 키우려는 터키 정부의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터키는 지난해 순유입액(투자금액―회수금액) 기준으로 182억 달러(22조9000억 원)의 FDI를 유치했다. 작년 한국 FDI 순유입액(22억 달러)의 8배 수준이다.

적극적인 투자 유치와 수출 확대의 효과로 2003년 3033억 달러였던 터키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지난해 7294억 달러로 급증했다. 세계 순위도 17위로 15위인 한국(9470억 달러)을 불과 두 계단 차이로 따라잡았다.

○ 작년 실적만 182억 달러… 한국의 8배

터키 경제가 살아나기 시작한 건 정의발전당(AKP)이 집권한 2003년부터다. 우파 경제정책과 이슬람식 사회정책의 결합을 당론으로 내세운 AKP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당수는 총리 취임 직후부터 내수 중심이었던 터키 경제를 수출주도형으로 전환하기 위해 강력한 개방정책을 추진했다.

우선 해외 기업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세제를 대폭 손질했다. 외국인과 터키인에게 각각 다르게 적용되던 세제를 일원화했고 38%였던 법인세율을 2003년에 20%로, 올해 6월에는 지역에 따라 2∼10% 수준까지 낮췄다.

2006년에는 총리 직속기구로 ISPAT를 설치했다. 세계 각국에서 온 30여 명의 지역 전문가는 터키에 투자하려는 외국기업에 입지 선정부터 거주시설 지원까지 모든 업무를 도맡아 처리해준다. 한국의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웨이스 토프라크 ISPAT 아시아·태평양지역 투자유치팀장은 “외국인이 한국에 투자하려면 각 지방자치단체 등에 따로 문의해야 하지만 터키에서는 ISPAT를 찾으면 모든 업무가 원스톱으로 처리된다”고 말했다.

세계은행(IBRD)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OECD 회원국에 회사를 설립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13일이지만 터키에서는 6일이면 회사를 세울 수 있다.

○ 수출 확대에도 적극 노력

터키 정부는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관문이라는 지리적 특성을 이용해 외국인 투자를 끌어들여 생산한 제품의 수출 확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터키의 주요 수출품목은 건축수주, 건축원자재, 선박, 농산물 등이다. 이미 동유럽, 중앙아시아 국가와의 교역이 급증했고 아프리카 시장도 적극 공략하고 있다.

2003년 473억 달러였던 터키의 수출은 2007년에 1072억 달러로 126.6%나 급증했다. 한국의 연간 실질 GDP 증가율이 4∼5%에 그친 2004∼2006년에 터키의 GDP는 매년 7∼9%의 높은 성장세를 보였고 최근 5년간 명목상의 경제 규모는 2.4배로 커졌다.

2006년부터 매년 2, 3회 정부의 후원을 받아 터키기업연합(TUSKON·투스콘)이 개최하는 세계무역박람회는 터키의 대표적인 수출 창구다. 5000여 명의 각국 기업인이 이 박람회를 찾아 100억 달러 정도의 계약을 맺는다.

특히 이달 3∼5일에는 유럽, 아프리카 등 지역별로 구분해 열리던 행사를 통합한 박람회가 이스탄불의 엑스포센터에서 열려 세계 각지에서 2300여 명의 외국 기업인이 방문했고 3200명의 터키 기업인이 이들을 맞았다.

2일 투스콘 세계무역박람회 개막식에 참석한 에르도안 총리는 “터키는 인구의 61%가 34세 이하로 2400만 명이나 되는 양질의 노동력을 보유하고 있다”며 “이를 바탕으로 FDI와 수출을 더 늘려 글로벌 경제 위기를 빠른 속도로 벗어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스탄불=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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