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13억 주고라도 인재 모셔라”

  • 입력 2009년 6월 1일 02시 53분


기업들 경력직 채용의뢰 임원급 선호 경향 뚜렷

대리급은 1년새 58%나 줄어… 이직시장 온도차

■ 불황기 몸값 양극화

#1. A증권은 지난달 국내외 영업총괄 임원으로 미국계 투자은행 출신의 국제금융전문가를 영입했다. 증시 침체로 어려운 여건이지만 A사는 핵심 인재 확보 차원에서 그에게 이전 연봉보다 30% 높은 연간 13억 원 이상을 제시했다. 첨단 소재 생산업체인 중견기업 B사도 해외에서 20년간 활동한 연구개발(R&D) 인력을 데려오기 위해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었다. 임원 직급을 주는 동시에 연봉으로 1억5000만 원을 약속한 것. 회사 관계자는 “활황에 대비해 R&D 부문의 최고 인재를 모셔오라는 지시가 떨어졌다”고 말했다.

#2. 이달 유통업체 대기업으로 이직한 김모 대리(29)는 지난해 들어온 선배의 연봉조건을 전해 듣고 요즘 기분이 언짢다. 대리급 1년 기본급은 4000만 원으로 큰 차이가 없지만 성과급이 지난해 기본급의 10%에서 올해 5%로 깎인 것. 회사 인사팀에 물어보니 “최근 경기 악화로 올해 경력직으로 입사한 사원들의 성과급을 모두 기본급의 5%로 하향 조정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김 대리는 ‘이왕 이직할 거였으면 작년에 서둘러 할 것을’이라며 후회했다.

이직 시장 ‘극과 극’

기업들이 불황기에도 핵심 인재 영입에 거액을 쓰면서 공을 들이고 있지만 일반 채용시장은 찬바람이 불고 있다. 동아일보가 헤드헌팅업체 엔터웨이 파트너스와 함께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4월 기업들의 채용의뢰 건수는 678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130건)에 비해 40%나 급감했다. 직급별로 보면 △임원급(―16.00%) △차장급(―27.01%) △부장급(―31.68%) △사원급(―37.84%) △과장급(―46.13%) △대리급(―57.94%) 순이어서 능력이 검증된 핵심 인재인 임원급 채용이 가장 적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불황일수록 핵심 인재에 대한 갈증은 더 커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반면 채용정보업체 커리어가 일반 직장인 177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올 들어 이직한 직장인의 58.1%는 연봉 상승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일반 고용시장에선 경기 악화로 일반 구직자들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어서다. 실제로 이직자의 43.7%는 “지금 직장 아니면 당장 갈 곳이 없어 연봉을 올리지 못했다”고 답했다.

헤드헌팅업체 커리어케어의 신현만 대표는 “경기가 악화되면 기업들이 줄어든 가용자원으로 최대 효과를 낼 수 있는 핵심 인재 영입에 집중한다”고 분석했다.

불황기 핵심 인재들 어디로 배치되나

기업들이 이처럼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는 핵심 인재들은 주로 어떤 직무에 투입될까. 커리어케어가 올 1월 임원급 채용공고 260건을 분석한 결과 최근 임원 수요가 가장 많은 분야는 전략기획 및 경영관리직으로 전체의 35.4%(92건)에 달했다. 기업들이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줄 수 있는 ‘컨트롤 타워’를 가장 필요로 하고 있는 셈이다.

이어 △영업(23.8%) △마케팅(15.4%) △연구개발(15.0%) △전문·특수(10.4%) 분야의 순으로 채용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신 대표는 “불황 타개를 위한 전략 수립과 경영혁신을 주도할 임원들의 중요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며 “지금 핵심 인재를 충분히 비축하지 못한 기업들은 활황을 맞아 결국 뒤처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업들 “인재 이탈을 막아라”

핵심 인재에 대한 영입 경쟁이 뜨거워지면서 이들의 이탈을 막으려는 기업들의 노력도 치열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돈을 많이 주는 직장보다는 미국 포천지에서 선정하는 ‘GWP(Great Workplace·훌륭한 일터)’처럼 일에 대한 흥미와 자부심 등 심리적 만족을 주는 회사가 이직 방지에 커다란 효과를 보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예컨대 현대카드·캐피탈은 지난해 새 인사제도인 ‘커리어마켓’ 도입으로 직원들을 가능하면 원하는 부서로 배치해 직무만족도를 높였다. 또 외국계 제조업체 B사는 최근 △공정한 기회 △상호존중 △투명한 인사제도 △일하기 좋은 직장 등 네 가지 인사 원칙을 세워 자율복장제와 탄력근무제, 심리·법률 상담지원, 퇴사 전 이직준비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등 최근 기업들은 앞 다퉈 핵심 인재들의 충성도를 높일 수 있는 각종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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