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기업 본연의 자리로”경영 안정성 확보가 숙제

  • 입력 2009년 5월 30일 02시 59분


■ 삼성 향후 전망과 재계 반응

경영권 편법 승계 논란을 사실상 일단락짓는 대법원 판결이 내려진 29일 삼성 측은 말을 아꼈다. 경제계는 삼성이 무거운 짐을 하나 벗었지만 지배구조에 대한 시비 자체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봤다.

1993년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신(新)경영 선언 이후 비약적 발전을 거듭하던 삼성은 2000년대 들어 ‘경영권 편법 승계 논란’이란 굴레를 썼다. 2000년 6월 법학교수 43명이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 발행 등의 책임을 물어 이 전 회장 등을 검찰에 고발한 것이 그 출발이었고 2007년 10월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시작된 특검 수사가 절정이었다. 계속되는 정치 사회적 논란 속에 결국 이 전 회장은 지난해 4월 경영일선에서 퇴진하는 ‘극약 처방’을 내려야 했다.

대법원 판결로 경영권 승계에 대한 법적 책임을 덜게 된 삼성은 이 전 회장의 장남인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 체제로 전환할 추동력을 얻게 됐다. 하지만 그 시기를 점치기는 아직 이르다. 재계에서는 삼성이 경영구조의 불안정성을 해소하기까지 최소 2∼3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지분구조만 보면 이 전무가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삼성에버랜드의 지분 25.1%를 보유하고 있어 명실상부한 대주주다. 하지만 ‘지배대주주=경영권 장악’이라는 등식이 자동적으로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이 전 회장은 “이 전무가 주주와 임직원, 사회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상태에서 삼성의 경영을 승계할 경우 불행한 일이 있을 것”이라며 ‘그룹 총수로서의 능력과 자격을 먼저 갖추라’고 요구해왔다.

이 전무가 지난해 하반기(7∼12월)부터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동남아시아 중남미 등 세계 곳곳을 누비며 활발한 경영행보를 하고 있는 것도 이런 주문에 부응하기 위해서다. 삼성 관계자들은 “이 전 회장은 1987년 그룹 회장이 되기까지 21년간 경영 현장에 있었지만 이 전무의 경영수업 기간은 9년 정도”라며 “경영권 승계 시기는 이 전무의 역량에 달려 있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그러나 이번 판결을 계기로 그룹 경영 전반에 대한 이 전무의 목소리가 커질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르면 올해 말 인사에서 부사장 또는 사장으로의 승진도 예상된다.

재계 일각에서는 “국가적 경제위기 상황인 만큼 이 전 회장이 다시 삼성을 이끌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오지만 삼성 측은 “국민 정서상 가능하겠느냐”며 선을 그었다. 시민단체들이 삼성에 요구해온 지주회사 전환이나 순환출자 구조 해소 문제도 단기간에 해법을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등은 이날 논평을 통해 대법원의 판결 결과를 환영하면서 삼성에는 “정도(正道)경영과 기업가정신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국민 신뢰를 회복하는 데 힘써줄 것”을 주문했다. 이와 관련해 삼성은 우선 국민에게 약속한 ‘불법자금의 사회 환원’ 실천방안을 강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회장은 지난해 “(조세포탈 죄가 적용된) 차명계좌의 돈 중 세금과 벌금을 납부하고 남은 금액은 사회에 유익한 일에 쓰겠다”고 밝힌 바 있다. 재계에서는 그 금액이 1조 원이 넘는 거액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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