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섹션 피플]민유성 산업은행장

  • 입력 2009년 5월 20일 02시 57분


“사모펀드식 구조조정, 매각사-채권자 윈윈모델”

“계열사 내놓으면 당근 제시…산은 프리미엄 얹어 매입
시장 회복되면 재매각…매각사 우선매수권 행사”

민유성 산업은행장(사진)이 기업 구조조정 방안으로 제시한 ‘사모펀드(PEF) 방식 구조조정’이 재계와 금융계의 초미의 관심사다. 지지부진한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기 위한 최적의 모델이라는 찬사도 있지만 ‘과연 투자자가 모일 것인가’ 하는 우려도 있다.

민 행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PEF로 사들일 기업의 실명(동부메탈)을 언급하며 “PEF로 구조조정을 하면 대기업 그룹은 비핵심 계열사를 산은에 잠시 맡긴 뒤 개선된 유동성으로 해외 인수합병(M&A)에 나서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며 “이는 그룹과 채권단이 윈윈 하는 길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산은은 구조조정 대상으로 거론되는 대다수 그룹의 주채권은행인 만큼 PEF 방식의 성공 여부는 곧 한국 경제 구조조정의 성패로 직결된다.

민 행장이 말하는 PEF식 구조조정의 핵심은 계열사를 내놓는 그룹에 ‘당근’을 주는 것이다. 우선매수청구권과 이익분배가 바로 그 당근. 산은 측은 “PEF를 활용해 구조조정을 하면서 이런 우호적인 조건을 내건 것은 국내 금융회사로서는 첫 시도”라고 설명한다.

민 행장의 구상은 이렇다. 우선 A그룹의 계열사를 산은이 PEF로 인수하기로 결정했다면 전문평가기관에 의뢰해 시가(時價)를 정하고 여기에 경영권 프리미엄을 20∼30% 얹어서 산다. 3∼5년 뒤 시장이 회복되면 회사를 다시 팔아 A그룹과 이익을 공유하거나 A그룹에 매각한 회사를 다시 살 수 있도록 우선매수청구권을 줘 경영권을 되찾을 기회도 주겠다는 것이다. 민 행장은 “이런 조건들을 주면 계열사를 헐값에 판다는 그룹들의 우려를 없앨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PEF에 참여하는 기관투자가와 산은은 ‘자금조달 금리+α’의 이익을 챙기게 된다. α의 크기와 재매각할 때 그룹과 어떤 비율로 이익을 공유할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민 행장은 “그룹들이 PEF로 선제적 구조조정을 해야만 글로벌 시장이 좋아졌을 때 앞으로 치고나갈 수 있다”고 강조한다.

민 행장의 구조조정 모델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일단 긍정적이다. 그대로 진행되면 채권단과 그룹 모두 이익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초 민 행장의 의도대로 구조조정에 속도가 붙을지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붙는다.

민 행장의 아이디어가 성공하려면 많은 기관투자가가 PEF에 참여해야 하는데 과연 기관투자가들이 매각 후 차익의 일부를 계열사를 내놓은 그룹에 돌려주는 투자 구조에 큰 매력을 느낄 것인가 하는 점이다. 기업구조조정에 참여하는 펀드는 연간 목표수익률이 20%를 넘는다. 산은이 고수익을 노리는 투자가 대신 안정적 수익을 기대하는 투자가들이 관심을 보일 것으로 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산은은 현재 중동, 중국, 일본 등에 있는 해외 기관투자가들에게 투자의사를 타진하고 있다.

우선매수청구권이 있기는 하지만 경영권을 뺏기는 데 대한 기업들의 거부감도 장애물이다. 국내 대기업의 한 임원은 “산은이 내놓은 방식은 과거 외환위기 때처럼 경영진에 책임을 묻고 경영권을 무조건 뺏기보다, 단기적으로 빼앗은 뒤 되찾을 기회를 주겠다는 합리적 방식”이라면서도 “그래도 기업 입장에서는 단기라도 경영권을 놓치기 싫은 게 현실이어서 이 정도 당근으로는 구조조정의 속도가 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의 이런 미지근한 반응 때문인지 민 행장의 실험이 성공하려면 당근 말고도 기업을 압박하는 ‘채찍’이 필요할 것이라는 지적이 금융계에서 나오고 있다.

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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