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짠물경영, 일본에 견주니 싱겁네

  • 입력 2009년 4월 14일 03시 01분


《‘마른 수건 쥐어짜기.’

올해 산업계 전반에 던져진 화두다.

사무용품 아끼기는 기본이고 회의 자료를 친절하게(?) 출력해 오면 종이 낭비의 주범으로 낙인찍힌다. 국내 및 해외 출장도 부쩍 줄었다. 그러나 벌써부터 “너무 작은 것으로 스트레스를 준다”는 직원 불만이 표출되고 있다. 회사 경영진과 위기를 바라보는 시각에서 ‘온도차’가 여전한 것. 특히 대규모 감원계획과 함께 상상을 초월하는 경비 절감 대책을 시행 중인 일본 기업들과 비교하면 “한국은 위기에 너무 둔감하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동전 한닢… 연필 한자루까지…

경비절감 노력 뜨겁지만 위기의식은 아직 낮은 편

이웃 일본선 CEO부터 솔선

버스 지하철 출퇴근에 아예 사장실 없는 곳도

○ 국내기업 경비 절감 백태(百態)

LG전자 HA사업본부는 이영하 사장 이하 모든 직원이 경남 창원시와 서울을 오갈 때 항공기 대신 KTX를 이용한다. 이 본부 구미공장에서는 분기별로 선정하는 모범사원에게 해외여행 대신 제주도 여행권을 지급했다. 지난해 4분기(10∼12월) 본사 기준으로 1조 원 가까운 영업적자를 낸 삼성전자도 경기 수원사업장 내에 재활용센터를 설치해 책상과 서랍장 등을 고쳐 쓰는 등 허리띠 졸라매기에 사활을 걸었다. KT는 직급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법인카드 한도를 절반으로 줄였다. 현대자동차도 사무직원이나 연구원들에게 “특근을 자제하라”는 지시를 내린 지 오래다.

경비 절감에 목을 매단 곳은 대기업뿐만이 아니다. 위니아만도는 마케팅비용을 대폭 삭감하는 동시에 각 사업부 경비도 10∼20%씩 줄였다. 대한전선은 창가 쪽 형광등을 아예 빼놓았고 엘리베이터도 4개 중 하나를 세웠다. 일진다이아몬드는 현재 안 쓰는 사무용기기와 장비 등 유휴 자산을 매각 또는 재활용해 5억 원의 경비를 절감했다.

직원들은 불만이다. 한 전자업체 직원은 “해외출장 시 예년 같으면 10명이 나가서 할 일을 5명이 한다”며 “상황이 힘든 것은 알지만 너무 융통성 없게 경비를 줄인다”고 토로했다. 삼성전자의 한 직원은 “가끔 ‘이런다고 얼마나 아끼겠나’ 싶은 지시가 내려와 피곤하고 짜증날 때가 있다”며 “세계 일류 회사답지 않은 모습이라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LG전자의 한 연구개발(R&D)센터는 프린트용지를 1월부터 아예 없앴다가 직원들 사이에서 “이건 너무 심하다”는 불만이 커지자 이달 들어 다시 종이를 구매하고 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회사 경영진들로서는 초조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삼성 계열사의 한 최고경영자(CEO)는 “경영진에 비해 실무 직원들의 위기의식이 너무 낮아 못마땅한 적이 많다”며 “회사가 아무리 어려워도 꼬박꼬박 월급이 나오기 때문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남용 LG전자 부회장도 2월 기자간담회 당시 일본 기업들의 대규모 구조조정을 언급하며 “환율 효과로 인한 착시 때문에 직원들이 위기를 잘 실감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우려한 바 있다.

○ 한 술 더 뜨는 일본 기업들

닛케이비즈니스는 최근호에서 ‘비용 절감의 달인’이라는 제목으로 일본 기업의 ‘짠돌이 경영’ 사례를 소개했다. 일본 업계의 경비 절감 운동은 오너나 CEO가 직접 주도한다는 게 두드러진다. 위에서부터 솔선수범해야 직원들의 마음가짐을 다잡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일본 최대의 경차제조업체 스즈키의 스즈키 오사무(鈴木修) 회장 겸 사장은 올해 1월 전 사원에 대한 서랍 조사를 총지휘해 1인당 지우개 1개, 연필 1자루, 볼펜 2자루(검정 빨강)만 남기고 모두 압수했다. 서랍에서 나온 갖가지 문방구에는 ‘전리품’이라는 이름을 붙여 한곳에 쌓아뒀다. 앞으로 비품을 구입할 때는 회장의 결재를 받도록 했다.

2008년 영업이익률이 40%에 이르렀던 공작기계 업체 화낙은 지난해 12월부터 명예회장과 사장마저도 고속철도인 신칸센을 탈 때 지정석 대신 요금이 싼 자유석을 이용하도록 했다. 회사 시설이 아닌 곳에서의 숙박과 해외출장은 원칙적으로 금지했고,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는 명예회장의 허가를 받도록 했다.

일본 스테인리스 급수탱크 시장의 70%를 차지하는 모리마쓰공업은 종업원이 2600명에 이르고 일본과 중국에 공장이 각각 5개씩 있는 중견기업이지만 사장실이 없다. 공간과 비서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12년째 인근 찻집을 사장실로 활용하고 있는 것.

전기설비업체인 미라이공업의 창업주는 1991년 구입한 승용차를 지금도 타고 다니고, JAL 사장은 버스와 전철로 출퇴근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산요전기와 중장비제조업체인 고마쓰 등 대기업들도 출장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가 하면 사무용기기업체인 리코는 올 1월부터 사내보 발행을 중단했다.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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