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만은…” 명품 키즈시장 매출 쑥

  • 입력 2009년 3월 31일 02시 53분


“헌것도 다시 한번” 중고품 리폼시장 호황

■ “우리는 불황 몰라요”

#1. 30대 초반의 주부 박민선 씨는 최근 세 살배기 딸에게 입힐 21만 원짜리 카디건을 ‘버버리 칠드런’ 매장에서 샀다. 4세용 옷이라 지금 입히기엔 큰 감이 없지 않지만 지금부터 2, 3년은 ‘폼 나게’ 입힐 것 같아 큰맘 먹고 지갑을 열었다.

박 씨는 “불황에 내가 명품 ‘버버리’를 입는 건 사치로 느껴지지만 내 아이에게만은 좋은 품질의 옷을 입히고 싶다”며 “아이를 통해 대리만족도 얻는다”고 말했다.

#2. 20대 후반 회사원 김정은 씨는 얼마 전 옷장을 정리하다가 어머니의 젊은 시절 원피스를 발견하고는 환호성을 질렀다. 어깨선과 목선이 구식이긴 했지만 옷 색감과 문양은 근사했던 것. 수선집에서 4만 원을 들여 이 옷을 고쳐 입자 동료들은 “멋있다”고 칭찬했다.

불황의 여파로 국내 소비자들 사이에서 ‘트레이딩 업(Trading up)’과 ‘트레이딩 다운(Trading down)’ 현상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트레이딩 업은 중산층 이상 소비자가 감성적 만족을 얻기 위해 가격이 비싸더라도 기꺼이 구매하는 현상이다. 반면 트레이딩 다운은 실속을 차리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이다. 언뜻 상반돼 보이는 두 현상은 돈을 쓸 때 소비의 가치를 중시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 아이 위해서라면 지갑열기 주저안해

불황과 저출산이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폭발적 성장세를 보이는 국내 고급 아동용품 시장은 트레이딩 업의 대표적 예다.

신세계백화점 본점이 올해 들어 3월 28일까지 전년 동기와 비교한 고급 수입 아동 브랜드 매출 신장률은 35%로 전체 아동 관련 상품 매출 신장률(15.6%)을 크게 웃돌았다. 아동복 수입 편집 매장 ‘키즈 스타일’에 입점한 일부 브랜드는 매출 신장률이 300∼500%대였다. 이달 들어서는 ‘아르마니’와 ‘돌체 앤 가바나’의 아동복들도 새롭게 선보이고 있다.

고가(高價) 유모차도 불황을 타지 않는다. 롯데백화점 본점에서 노르웨이제 ‘스토케’ 유모차(165만 원)는 지난해 1, 2월 6대가 팔렸지만 올해 같은 기간엔 12대가 팔렸다.

롯데는 다음 달 봄 정기세일에선 유럽 왕족과 유명 스포츠 선수 등이 애용하는 독일 콩코드사(社)의 500만 원대 ‘네오 카본’ 유모차도 선보일 예정이다. 알루미늄 대신 자동차와 항공기에 쓰이는 탄소 성분의 카본 재질을 사용해 내구성을 높인 게 특징이다.

○ “옛 물건도 다시 보자”

불황에 수선집도 호황을 맞았다.

아이파크백화점에 따르면 최근 이 백화점 패션관에서 제공하는 수선서비스를 이용한 고객은 작년 10월부터 매달 10% 이상 꾸준히 상승해 올해 2월에는 수선실 한 곳의 월 매출이 1200만 원을 넘어섰다. 이는 지난해 월평균 매출액 750만 원을 크게 넘어서는 수치다.

아이파크백화점 측은 “본래 백화점 수선실은 신상품 구입 고객을 위해 만든 것이지만 최근에는 ‘리폼(reform) 서비스’로 그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며 “요즘엔 신상품 수선이 자취를 감추고, 길게는 10년 이상 된 중고 상품 리폼도 크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온라인 장터도 ‘수선 천국’이다.

‘옥션’이 선정한 지난해 히트상품 1위는 12만5000개가 팔린 ‘리폼 상품’이었다. 올해 들어서는 수선비용조차 줄이려는 ‘알뜰족’이 늘어나 ‘셀프 리폼’ 용품의 매출도 늘고 있다. 3월 재봉틀과 운동화 밑창 등 수선 관련 상품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0% 이상 늘어났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경기 불황이라고 해서 모든 지출이 일률적으로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라며 “한국 소비자들은 의류 소비는 확 줄여도 자녀와 관련된 소비는 끝까지 줄이지 않다가 마지막에 줄이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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