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잡티 감춰라” 예쁜 화질 TV 뜬다

  • 입력 2009년 3월 11일 03시 00분


지난해 10월 모 지상파 방송사 관계자들과 LG전자 액정표시장치(LCD) TV 연구소의 화질 전문가들이 한 회의실에 마주 앉았다. 방송사가 송출한 화면을 어떻게 하면 선명하고 생동감 있게 시청자에게 전달할 수 있을지에 관해 열띤 회의가 벌어졌다.

그러던 중 방송사 PD가 “요즘 고화질 TV가 보급되면서 피부 트러블을 숨길 수 없어 탤런트들이 고민이 많다”는 말을 툭 던졌다.

순간 LG전자 연구원들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피부색을 선명하게 표현하는 것이 지나치면 오히려 해(害)가 될 수 있구나”, “품질이 너무 좋은 것도 문제네…”.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가 지체 없이 이뤄졌다. 시청자 수백 명에게 ‘TV 화질의 개선점이 무엇인가’를 물었다. 놀랍게도 응답자 10명 중 1명은 “화면이 너무 선명해 연예인이나 아나운서 얼굴의 잡티까지 보여주면 부담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에 따라 LG전자 화질그룹은 2009년형 TV에는 전체적인 선명도는 자연색에 가깝도록 높이되 사람 피부색 선명도는 적당한 수준으로 낮추기로 결정했다. 색의 영역에서 사람 피부색은 일정 영역 안에 모두 포함되기 때문에 화질을 이원화하는 것은 크게 어려운 기술이 아니었다.

올해 LG전자가 전략적으로 내세우는 ‘컬러 디캔팅(decanting·와인을 만들 때 불순물을 제거하고 숨겨진 향을 이끌어 내는 과정)’의 핵심기술 중 하나인 ‘2A 샤프니스(sharpness)’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이 회사 LCD TV 연구소 화질그룹장인 윤주호 수석연구원은 “피부색을 인식하는 기능은 이미 3, 4년 전 개발됐지만 그동안은 색 변환 정도에 그쳤다”며 “이를 선명도와 연계해 피부색을 자연스럽게 표현한 건 아이디어 싸움에서 한발 앞선 결과”라고 말했다.

여기에 회로와 패널에 각각 별도의 영상엔진을 구동시켜 두 번 화질을 조정하는 ‘트윈 XD 엔진’을 적용함으로써 최대한 자연스러운 화질을 표현해 냈다.

LG전자는 1월에 나온 플라스마디스플레이패널(PDP) TV ‘엑스캔버스 보보스’를 시작으로 올해 출시될 22개 TV 시리즈 모두에 이 컬러 디캔팅 기술을 적용할 예정이다.

LG전자는 2004년 8월 사내(社內) 전문가들을 모두 모아 화질팀을 만들었다. 일본 경쟁사에서 스카우트해 온 임원급 화질 전문가들까지 투입했다. 현재는 출범 당시보다 인원이 곱절 이상으로 늘었다.

10여 년간 화질에만 ‘다걸기’해 온 윤 연구원은 2006년부터 팀을 이끌고 있다.

그는 “TV 화질이 나날이 발전하면서 150만 원짜리 TV와 방송국에서 쓰는 5000만 원짜리 모니터가 큰 차이가 없어졌다”며 “앞으로 관건은 소비자 기호에 맞는 제품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컬러 디캔팅은 그 시작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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