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붕 아래 사는 행복 꼭 찾을겁니다”

  • 입력 2009년 2월 23일 02시 54분


3평짜리 과일가게 열어 재기의 꿈 키우는 고윤복 씨

외환위기로 직장 잃고/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져/10년 과일 트럭행상에 빚만/모서리 헤진 낡은 지갑속/반듯하게 커준 아들 사진/돈보다 값진 희망이 자란다

1998년 1월 서울. 초등학생 아들을 둔 30대 후반의 가장은 갑작스러운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었다. 15년간 중견 건설사에서 일하며 수십억 원 규모의 공사 현장까지 관리했던 그였지만 직장을 떠나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실직에 이은 생활고와 가족의 해체. 아들은 충남 태안의 고향집에 보내졌다. 그는 1t 트럭에 몸을 싣고 전국을 돌며 과일을 팔기 시작했다. 꼭 재기해 한지붕 밑에서 가족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야 하는 삶은 고단했다.

어느 해인가 설에는 아들과 부모가 기다리는 고향을 뒤로하고 대목 장사에 나섰다가 폭설 속에 차가 갇혔다. 간신히 몸은 빠져나왔지만 명절 장사를 위해 잔뜩 사둔 과일이 트럭 속에서 꽁꽁 얼어버렸다. 수백만 원의 장사밑천이 순식간에 날아갔다.

장사를 공칠수록 빚은 불었고, 빚은 또 다른 빚을 불렀다. 카드로 돌려 막던 1000여만 원의 빚은 결국 그에게 ‘신용불량자’라는 낙인을 남겼다.

그가 2009년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낡은 아파트 상가 모퉁이의 3평(약 9.9m²) 남짓한 허름한 과일가게지만 어엿한 사장님이 됐다. 올해 1월 서울 동작구 상도동에 문을 연 송암청과의 고윤복 사장(48)이다.

눈발이 간간이 날리던 20일 오전 고 씨는 도매시장에서 막 사온 사과, 배, 딸기 등 과일을 바구니에 담아 가게에 진열하고 있었다. 변변한 간판도 아직 없었다. ‘신장개업’이라는 푯말과 함께 과일이 늘어선 한쪽 벽면은 지나는 손님을 끌기 위해 창문조차 달아 놓지 않아 찬바람이 그대로 가게 내부로 들이쳤다.

하지만 고 씨의 표정은 밝았다. 모서리가 헤진 낡은 지갑 속에는 돈보다 값진 희망이 자라고 있었다. 그는 올해 고3이 되는 아들의 빛바랜 사진과 꼬깃꼬깃 접어놓은 신문기사 조각을 지갑 속에서 꺼내 보였다.

10년 가까이 떨어져 살았던 아들은 시골에서 장학금을 받고 학교를 다니며 교육대학 진학을 꿈꿀 정도로 반듯하게 컸다. 아들 얘기가 나오자 무뚝뚝했던 그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지갑 속 신문기사는 “하나희망재단이 저소득층 창업을 위해 무담보 소액신용대출(마이크로크레디트) 사업을 한다”는 지난해 8월 25일자 동아일보 기사. 과일 장사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지만 담보도 없고 신용등급도 낮아 가게를 차릴 엄두를 내지 못하던 그에게 한줄기 희망이었다.

하나희망재단은 그의 경험과 열정을 보고 담보나 보증 없이도 2000만 원의 창업자금을 선뜻 내밀었다. 연 3%, 1년 거치 4년 원금분할 상환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이다. 고 씨는 1000만 원으로 가게를 얻고 700만 원어치의 과일을 마련해 생애 처음 자신의 가게를 열었다.

그는 요즘 매일 새벽 도매시장에서 과일을 사다가 지하철이 끊기는 오전 1시까지 장사한다. 현금영수증도 발급해주고 신용카드도 받는다. 남의 돈을 가져다 쓰니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직하게 돈을 벌겠다는 뜻도 있다.

고 씨는 “죽느니 차라리 살겠다는 마음으로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며 “우선 빚을 갚은 뒤 과일 장사 경험을 나눠 다른 사람의 재기를 돕고 싶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친 그는 지난해까지 일터였던 1t 트럭으로 향했다. “가게에서 팔다 남은 딸기의 신선도가 떨어지기 전에 잠시 짬을 내 아파트단지를 돌며 팔려고 한다”며 트럭의 시동을 힘차게 걸었다.

박용 기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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