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전 ‘전봇대 하나 못 옮기던 대불산단’ 지금은

  • 입력 2009년 1월 16일 02시 58분


15일 오후 전남 영암군 대불국가산업단지 내 도로를 대형 트랜스포터가 힘겹게 지나가고 있다. 영암=박영철  기자
15일 오후 전남 영암군 대불국가산업단지 내 도로를 대형 트랜스포터가 힘겹게 지나가고 있다. 영암=박영철 기자
‘그 전봇대’는 옮겨졌지만…

선실 제조사 고압전선 때문에 6개월만에 사업 접어

한전 변전소 설치 나서 또다른 교통장애 가능성도

전남 영암군 삼호읍 대불국가산업단지에서 조선 관련 기업인 마린텍은 지난해 2월 산단 내에 선실제조 합작사를 설립했다가 6개월 만에 이 사업을 접었다.

“지난해 1월 이명박 대통령이 대불산단 전봇대를 뽑겠다고 선언한 뒤 이제 (사업이) 되겠다 싶었습니다. 마침 괜찮은 협력사도 찾았고 논의가 급진전돼 선박의 선실 부분인 ‘덱하우스’를 만드는 합작사를 설립했죠.”

당시만 해도 김용환 마린텍 대표이사는 기대와 희망에 부풀었었다. 하지만 그는 지난해 8월경 이곳의 사업을 포기해야만 했다. 공장에서 대불항으로 향하는 길목인 원당 사거리의 154KV 고압 전선이 원인이었다. 높이 40m의 완제품 덱하우스를 실은 트럭으로서는 17m 높이의 고압 전선을 도저히 통과할 수 없었고 공장에서 상품 반출을 못하게 된 김 대표는 결국 다른 공단으로의 사업장 이전을 결정했다.

○ ‘보이지 않는’ 전봇대 여전히 남아

한국전력과 영암군이 전봇대의 지중화(地中化) 작업을 꾸준히 추진해온 덕분에 2004년부터 현재까지 모두 252곳에서 작업을 마쳤다. 도로 위를 가로지르는 전선은 거의 다 땅 밑으로 묻었고 올해는 폭이 좁은 도로 옆 전선들을 대상으로 작업을 할 예정이다.

이 대통령이 취임 전인 지난해 1월 18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간사단 회의에서 지적한 문제의 ‘전봇대’도 이틀 뒤 한전이 하천 쪽으로 3m가량 옮겼다.

하지만 이로부터 약 1년이 지난 15일 대불산단 내 몇몇 지역에선 여전히 ‘전봇대’가 문제를 낳고 있었다.

현재 산단 내에서 가장 큰 논란을 빚고 있는 원당 사거리의 고압전선 이전 문제는 인근 기업들이 정부와 한전에 도움을 요청하다가 반응이 시원치 않자 결국 기업 스스로 자금을 부담해 높이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또 지중화 사업의 혜택이 중소업체들에도 확대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산단에서 배관과 파이프를 제조하는 중소기업인 푸른중공업 간부들의 매일 오전 첫 일정은 이웃한 회사들에 사과 인사를 가는 일이다. 공장 정문 앞의 전봇대를 피해 폭 6m인 도로를 빠져나가려면 이웃 회사의 담을 허물어뜨리기가 일쑤이기 때문이다.

이 회사 장정희 부사장은 “한전에선 회사 앞 전주니 우리가 지중화 비용 일부를 지불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중소기업으로선 부담이 너무 크다”고 털어놨다.

○ 새로운 장애물도 잇따라

대불산단에서는 ‘전봇대 사건’ 이후 새로운 유형의 장애물도 나타났다.

지난해 5월경 한전은 산단 기업들과 협의 없이 공장 밀집지역에 변전소를 설치하겠다고 나섰다. 이에 산단 경영자협의회는 한전에 공문을 보내 밀집지역 내 공사로 교통장애가 발생할 수 있고 사업장에 방해가 된다고 하소연했다.

이에 대해 한전 관계자는 “변전소 문제는 이미 관련기관 및 업체들과 협의했다”며 “해당 용지가 전력소의 최적지여서 공단 발전을 위해서는 일시적인 불편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산단 내의 획일적인 도로교통법 적용도 불편을 낳고 있다.

이곳 기업들에 따르면 현행 도로교통법은 커다란 블록을 실은 트랜스포터(선박 블록 운반용 초대형 차량)의 통행을 야간으로 제한하고 있어 물량이 공장 내에 쌓인 나머지 타이밍을 놓쳐 발주처에 전달하지 못하는 사례가 빈번하다는 것이다.

한 블록업체 관계자는 “일부 개선 사례가 있기는 하지만 입주 기업들이 원하는 만큼 빠른 변화가 이뤄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달린다”며 “물리적인 전봇대뿐만 아니라 각종 유형의 규제 등 보이지 않는 전봇대까지 사라지려면 요원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기사의 취재에는 본보 대학생 인턴기자 김태영(27·서울대 언론정보학과4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영암=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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