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를 디자인하라

  • 입력 2009년 1월 16일 02시 58분


건설업계, 범죄예방 조명-맞춤형 수납 ‘공간 미학’ 경쟁

‘가로등과 형광등으로 범죄를 예방할 수 있도록 사각지대를 없애고 움직임을 뚜렷이 식별할 수 있는 모델을 개발하라.’

요즘 현대건설 상품디자인팀은 아파트단지 안에 설치할 가로등 및 지하주차장 형광등의 모양과 배치 방식을 집중 연구 중이다. 밝기와 각도를 적절히 유지해 잠재 범죄자들이 쉽게 행동하지 못하게 하는 ‘범죄예방 디자인’을 하반기부터 착공하는 모든 아파트에 적용하기 위해서다.

현대건설 김연수 상품디자인팀장은 “범죄를 예방하는 것은 물론 에너지 효율을 높여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등 눈에 잘 안 보이는 분야의 디자인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올해 디자인 전략”이라고 말했다.

경기 침체로 각종 비용을 줄이고 있는 국내 건설사들이 디자인 연구개발에는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디자인 역량을 강화해 호황기가 되면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전략이다.

○ 천장은 높이고 주방은 바(Bar)처럼

그동안 외형 디자인, 유명 디자이너 섭외 등을 놓고 경쟁하던 건설사들이 올해는 가구별 맞춤형 디자인 개발, 수납시설 디자인 강화 등 새로운 형태의 경쟁에 나섰다.

롯데건설은 지난해 한국IBM과 공동 개발한 주택 트렌드 분석 시스템을 본격 가동해 다양한 맞춤형 아파트의 디자인을 개발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1, 2인 가구를 겨냥한 미니 아파트의 콘셉트 디자인.

‘롯데 캐슬미니’란 이름의 이 콘셉트 아파트는 5가지 디자인으로 이뤄져 있다. 도심 직장인들의 재택근무용인 ‘다이아몬드 스타일’은 비즈니스 모임을 위해 천장을 높이고 편안한 느낌을 주도록 했다. 신혼부부용인 ‘에메랄드 스타일’은 부엌 가구를 ‘ㄱ’자 형으로 배치해 작은 바 분위기가 나면서 거실 공간은 크게 느껴지도록 했다.

포스코건설은 세탁공간을 실내로 들여오고 주방 옆 보조공간의 수납시설을 다양화하는 디자인을 개발 중이다. 이 회사 상품설계그룹 관계자는 “아파트 외관, 거실, 방, 부엌처럼 눈에 잘 보이는 공간뿐 아니라 숨어 있는 공간의 디자인에도 신경을 쓰겠다”고 말했다.

디자인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조직 개편에 나서기도 한다. 대우건설은 빠르고 원활한 디자인 개발을 위해 디자인 관련 조직을 통합하고 디자이너 수도 늘릴 계획이다.

○ 좋은 디자인으로 용적률 높이고 시장도 선점

전문가들은 주요 건설업체들이 디자인 경쟁력을 높이는 데 공을 들이는 것은 정부의 정책 변화에 발맞춰 주택 경기가 활성화될 때 시장을 앞서 공략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분석한다.

서울시는 올해부터 디자인이 뛰어난 새 아파트에는 용적률을 10%까지 올리도록 인센티브를 주는 ‘디자인 우대정책’을 도입했다. 정부가 부동산 규제를 대폭 완화해 주택 경기를 부양하려는 정책도 영향을 미쳤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김민형 연구위원은 “각종 부동산 규제가 풀리면 인기 지역을 중심으로 대형, 고급형 아파트들이 새로 지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이런 아파트들을 시공하려면 차별화된 디자인 개발능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GS건설 상품개발팀 관계자는 “아파트는 분양받고 2년 정도 있다가 입주하기 때문에 최소 2, 3년 뒤의 디자인을 예측해야 한다”며 “경기침체라고 디자인 투자를 줄이면 경기 회복 시점에 좋은 물량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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