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소 송아지를 2만원에 팔라니…”

  • 입력 2008년 12월 26일 02시 57분


유례없는 소값 폭락… 낙농가 울상

미국산에 밀리고 ‘육우’ 표시 소비자 꺼려

작년의 20분의1 값… 사료비 못대 포기도

“정부, 한우만 지원 말고 육우 대책 세워라”

“젖소 인공수정 한 번 하는 데 드는 비용이 3만 원입니다. 그나마 두세 번은 해야 간신히 성공하는데 송아지를 내다 팔아도 인공수정 비용조차 못 건지니….”

충북 청원군 오창면 가곡리에서 22년째 낙농육우업에 종사하고 있는 김시분(52·여) 씨는 키우고 있는 30여 마리의 젖소만 쳐다보면 한숨부터 나온다. 지난해 6월만 해도 40만∼50만 원 하던 송아지 값이 10분의 1 수준으로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김 씨는 “과거 몇 차례의 소 값 파동 때도 이런 적은 없었다”며 “사료 값마저 크게 오르면서 부담이 너무 커져 송아지들이 죽지 않을 만큼만 조금씩 먹이를 주고 있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전국의 낙농육우 농가들이 폭락한 젖소 송아지 값으로 애를 태우고 있다.

산지 젖소 송아지 가격이 수컷의 경우 평균 3만 원 미만 수준으로 하락한 데다 거래마저 끊겨 ‘울며 겨자 먹기’로 키우고 있는 상황이다. 대량 도산의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



○ 일부 농가는 건강원에 팔기도

23일 전남 무안군 전남도청 앞 광장에 젖소 송아지 10여 마리가 등장했다. 전남지역 낙농가들이 송아지 값 폭락 항의 시위를 하면서 트럭에 싣고 온 수송아지들이다.

이들은 “송아지를 2만 원에 내놔도 사 갈 사람이 없다”며 정부에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부 농가는 사육을 포기하고 건강원에 내다 팔고 있으며 인터넷에는 공짜로 송아지를 주겠다는 글도 올라오고 있다.

경남 사천시 용현면에서 젖소를 키우는 송근수(48) 씨는 “송아지를 낳자마자 건강원에 7만 원 정도를 받고 파는 농가도 있다”며 “차마 살아 있는 짐승을 그럴 수 없어 참고 키우고 있지만 오죽하면 그렇게 하겠느냐”며 하소연했다.

낙농육우 농민 대표자와 농민 단체장들은 24일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육우의 안정적 판로 확보 등 대책 마련을 요구하기도 했다.

○ 미국산 수입에다 원산지 표시가 원인

이처럼 젖소 송아지 값이 폭락한 것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와 원산지 표시제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한국낙농육우협회에 따르면 육우의 주 경쟁 상대인 미 쇠고기가 다시 들어오면서 가격이 30% 정도 떨어졌다. 여기에다 사료 값마저 크게 오르면서 육우 농가들이 젖소 송아지 사육을 포기했고 결국 송아지 값 폭락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실제 육우 600kg의 생산비는 평균 380만 원이지만 판매 수익은 280만 원에 불과해 육우를 키워 팔면 오히려 손해를 보고 있다.

원산지 표시제가 강화된 것도 한 원인이다. 과거에는 식당에서 한우와 육우 모두 국내산으로만 표시해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국내산이라고 하면 한우로 생각했다. 하지만 원산지 표시제로 인해 이제 한우가 아니라 육우라고 하면 소비자들이 꺼리게 된 것이다.

○ 축산기반 붕괴 막는 근본적 대책 필요

정부는 군부대에 납품하는 육우 물량을 늘리고 △우량 육우에 대한 지원 △농협 하나로마트에 육우 전문점 설치 △육우 이동판매시설 지원 △젖소 송아지 값 손해보전 등의 대책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낙농육우 농가들은 한우를 대상으로 한 송아지 생산안정사업에 젖소를 포함시키고 사료 비축을 위한 대형 기계 지원 등 사육기반 붕괴를 막을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주문하고 있다.

예산축협 박연교 조합장은 “대규모의 사료 지원 사업 등 정부 차원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자립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북도 관계자는 “육우의 맛이 한우나 수입쇠고기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며 “낙농육우 농가들이 힘을 모아 육우전문판매점 등을 확대하는 등 소비자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청원=장기우 기자 straw825@donga.com

지방팀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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