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아파트 경매 54%가 빚 못갚는 ‘깡통’

  • 입력 2008년 12월 19일 03시 07분


■ 2007. 11-2008. 10 수도권 낙찰 부동산 1만1548건 분석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A저축은행은 최근 1억 원이 넘는 부실채권 하나를 새로 떠안았다. 2006년 상반기에 강남구의 한 아파트를 담보로 빌려준 16억4000만 원의 대출금이 회수되지 않자 법원에 경매를 신청했지만 15억 원에 낙찰됐다. 대출 당시 이 아파트의 시세는 약 22억 원으로 담보가치가 충분했지만 최근 부동산 가격 급락으로 대출 원금 회수조차 불가능해진 것이다. 이른바 ‘버블세븐’ 지역을 중심으로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면서 금융권이 부동산 담보대출금을 회수하지 못하는 ‘깡통 부동산’이 최근 속출하고 있다. 금융기관이 부동산을 법원 경매로 넘기더라도 대출금을 전액 회수하는 비율이 낮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결과는 18일 동아일보 경제부가 부동산 경매정보업체인 지지옥션과 함께 지난해 11월 1일부터 올해 10월 말까지 수도권 법정 경매에서 낙찰된 1만1548건의 아파트, 단독주택, 다세대주택, 오피스텔, 상가 등 5개 부동산 상품을 분석해 확인된 것이다.》

수도권 아파트 깡통 비율 1년새 갑절로

버블세븐지역 31.6%… 서울 평균의 2배

불황에 상가도 절반이상 채권 회수 못해

부동산값 추가 하락땐 부실 악순환 우려

○ 낙찰된 분당 아파트 절반은 ‘깡통’

경매 결과 깡통 아파트의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경기 성남시 분당신도시. 이번 조사에 따르면 최근 1년간 경매시장에서 낙찰된 분당신도시 아파트의 54%는 부채를 갚을 수 없을 만큼 낮은 가격에 낙찰됐다. 이어 경기 용인시 기흥(39%) 수지구(39%)와 서울 강남(26%) 서초(23%) 송파구(27%) 등 버블세븐 지역에서 깡통 아파트의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부동산컨설팅업체인 유엔알의 박상언 사장은 “2006년 후반부터 이들 지역에서 40%의 담보인정비율(LTV) 규제가 적용돼 은행들은 이를 지켰지만 LTV 규제 준수 의무가 없는 저축은행과 대부업체 등은 은행보다 높은 금리로 시세의 80∼90%까지 대출해 주었다”고 말했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사는 정모(45) 씨도 2006년 말 금융권에서 5억 원을 대출받아 서울 송파구 잠실동 주공5단지 116m²의 아파트를 9억 원에 매입했다. 부담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1억8000만 원에 전세도 주었다. 한때 13억 원까지 올랐던 아파트는 최근 8억5000만 원대까지 떨어졌다. 대출 이자는 급등하고 전세금도 돌려주지 못하게 되자 정 씨의 아파트는 결국 법정 경매로 넘어갔다.

지지옥션 강은 팀장은 “주택 가격이 상승 중이면 금융권에서도 몇 달 이자를 내지 못한다고 경매로 넘기지는 않는다”며 “하지만 최근 집값이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어 채권 미회수를 우려한 저축은행 등이 대출이자를 몇 달만 내지 못해도 곧바로 경매 처분에 들어가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 경기 불황에 상가 불황 심각

그나마 아파트는 상가에 비해 훨씬 상황이 좋은 편이다. 이번 조사에서 서울(50%) 인천(54%) 경기(54%) 등 수도권 전 지역에서 경매 물건으로 나온 상가의 절반 이상이 채권보다 낮은 가격에 낙찰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별로 보면 서울에서 소규모 상가가 밀집한 동대문 중구 등의 채권 미회수 비율은 60∼70%에 달했다. 또 최근 상가가 집중적으로 분양된 경기 안산시 상록구 등도 채권 미회수 비율이 80%에 이르렀다.

상가컨설팅업체인 상가뉴스레이더의 선종필 대표는 “상가는 보통 감정가의 50%까지 금융권으로부터 대출이 이뤄졌으나 최근 상가의 과다 공급과 경기불황의 여파로 테마쇼핑몰 등의 소규모 상가 공실(空室)이 늘면서 경매시장으로 넘어가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 실물경제가 관건

일부 부동산 전문가는 깡통 부동산이 급증하면 약 300조 원에 달하는 주택담보대출이 부실화하면서 금융권이 위기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집값이 추가로 하락하면 금융회사는 대출 원리금 회수를 요구하고 소득이 줄어든 개인이 이를 갚지 못하면 결국 금융회사 부실이라는 악순환의 고리가 생길 수 있다는 것.

하지만 미국처럼 주택가격 하락에 따른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가 일어날 단계는 아니라는 분석이 아직은 지배적이다.

금융감독원의 한 관계자는 “국내 금융권 평균 LTV는 현재 50% 미만으로 미국 서브프라임 평균 LTV 94%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데다 주택담보대출 연체비율도 1% 미만”이라고 설명했다.

또 미국처럼 주택 소유자들이 집값이 하락하면서 고의로 집을 포기하고 원리금을 갚지 않은 일이 생길 가능성도 적다. 국내에서는 집주인이 대출 원리금을 갚지 못하면 금융권이 다른 자산이나 급여를 압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성대 부동산대학원의 이용만 교수는 “아직까지는 일반 가계소득이 떨어져 대출 원리금을 못 갚는 사례가 많지 않아 보인다”며 “다만 집값이 추가 하락하고 대량 구조조정 사태가 오면 부동산 가격 하락에 따른 경제 시스템 붕괴라는 최악의 사태가 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정혜진 기자 hyejin@donga.com

▼ 강북권 아파트 담보가치 상대적으로 안정 ▼

서울 강북권 등의 아파트는 버블세븐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채권 원본 중 일부분이라도 회수하지 못하는 깡통 부동산의 비율이 낮았다.

이번 조사에 따르면 서울 노원 도봉구 아파트의 채권 미회수 비율은 7%대에 불과했다. 또 도심과 가까워 직장인 등 실거주가 많은 서대문구 역시 이 기간에 낙찰된 53채의 아파트 중 3채만이 감정가보다 낮은 가격에 낙찰됐다.

최근에는 가격이 하락하고 있지만 뉴타운 열풍으로 경매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다세대 다가구주택도 비교적 깡통 부동산이 적었다. 연립다세대주택 채권 미회수 비율을 지역별로 보면 서울(7%) 경기(6%) 인천(4%) 모두 10% 미만이다.

오피스텔도 올 한 해 동안 부동산시장의 틈새 투자 상품으로 인기를 끌면서 경매시장에 넘어온 물량이 적었다.

강은 팀장은 “서울 강북권 아파트 등은 현재까지는 상대적으로 담보가치가 안정적인 것으로 분석됐지만 집값이 추가 하락하면 이마저도 부실 채권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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