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 건설사 퇴출 착수… “올 것이 왔다” 업계 뒤숭숭

  • 입력 2008년 11월 18일 02시 59분


■ 채권은행단, 7개사 ‘지원중단 등급’ 분류

대주단 가입 놓고 건설사 ‘눈치작전’ 극심

은행권은 ‘살생부’ 논란으로 번질까 긴장

금융위 “대주단 가입에 시한-강제성 없다”

건설업계를 시작으로 기업 구조조정의 서막이 올랐다.

정부와 은행권은 구조조정 프로그램인 대주단(채권단) 협약을 통해 ‘옥석 가리기’에 나서기로 하고 건설사의 가입을 독려하고 있다.

건설업체들은 극도의 ‘눈치작전’을 펼치면서도 “대주단에 가입해야 회생할 수 있다” “자칫 은행에 발목이 잡힐 수 있다” “자력 생존할 수 있기 때문에 가입 안 한다”는 등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인다. 등급을 가려 지원에 나서야 할 은행권은 ‘살생부’ 논란으로 이어질까 봐 긴장하고 있다.

○ 괜찮은 건설사들 “가입 안 한다”

채권은행들이 건설사 재무 상태를 분석한 결과 추가 자금 지원이 힘든 C등급 이하에 시공능력 평가액 기준 상위 30위권 건설사 2곳이 포함된 것과 관련해 건설업계 안팎에선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다.

반면 최근 워크아웃을 끝내고 매각을 추진 중인 A사는 대주단 가입 얘기가 나오는 데 대해 몹시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당장 문제가 없는데 대주단에 가입했다간 자산매각과 인력 구조조정 등을 다시 한 번 겪을 수도 있기 때문. 이 회사의 관계자는 “현재 유동성에 문제가 없어 되도록 가입하지 않을 예정”이라며 “오히려 이번 일을 계기로 건설업계가 재편되면 도약할 기회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 타 업체 분위기 파악 동분서주

모 그룹사 계열 건설사인 B사는 그룹 측이 ‘대주단 가입으로 자칫 그룹의 이미지가 하락할 수 있고, 경영권 간섭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B사는 자금이 필요 한데다 그룹에 기대기도 어려운 상황이어서 “대주단 가입을 허락해 달라”고 그룹 수뇌부를 설득하고 있다.

미분양이 많은 중견 건설업체 C사는 가입 여부를 놓고 채권단 등의 분위기를 파악하느라 동분서주하고 있다. 다른 업체보다 먼저 가입해도 보안이 유지될지, 경영권은 보장될지 등을 놓고 눈치작전을 펴고 있는 것.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등에서 해외사업을 벌이고 있는 중견건설업체 D사는 대주단에 가입하면 해외사업 수주에 차질이 빚어지지나 않을지 전전긍긍했다. 가입하면 당장은 도움이 되겠지만 해외공사 수주전에서 약점으로 작용해 외국 업체에 밀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 은행도 고민 중

은행 보험 증권사 등 많은 금융회사들이 대주단에 포함돼 있지만 특정 건설업체의 가입 여부를 결정하는 건 결국 주채권 은행.

금융권에 따르면 100대 건설사 중 우리은행이 21개 업체의 주채권은행으로 가장 많다. 이어 국민은행(19개사) 농협(16개사) 산업(12개사) 신한(11개사) 외환은행(5개사) 등의 순. 100대 건설사의 주채권은행에 포함되지 않은 하나은행이 눈길을 끌었다.

한 시중 은행 관계자는 “당국이 기준을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웬만하면 가입 승인을 해 달라’는 분위기”라며 “부실한 업체까지 가입 승인을 해줬다가 ‘말로만 옥석 가리기’라는 평가가 나오고, 은행 경영에도 부담이 될까봐 고민”이라고 하소연했다.

건설업체들의 막무가내식 요구도 큰 부담이다. 한 시중은행의 심사부장은 “건설업종은 부실이 재무제표 등에 제대로 반영이 안 돼 있는 게 특징”이라며 “거래 건설사들은 모두 ‘이번 고비만 넘기면 아무 문제없다’고 하는데 섣불리 승인해 주기도, 거절하기도 어려워 난감하다”고 털어놨다.

○ 정부 “빨리 진행돼야 모두 산다”

임승태 금융위원회 사무처장은 17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대주단 가입은 ‘일시적으로 자금난을 겪는 곳’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강제할 수는 없다”며 “꼭 집단으로 들어오라는 것은 아니며 마감시한이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밝혔다.

임 사무처장은 “(대주단 가입이) 빨리 진행돼야 건설업종 전체의 불확실성을 해소할 수 있다”면서 “대주단은 일단 살리는 것이 목적이지만 도저히 안 되면 탈락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박용 기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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