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에 쓰러진 텔슨, 직원들이 다시 세웠다

  • 입력 2008년 11월 10일 03시 03분


2005년 파산 선고를 받았을 때 떠나지 않고 회사를 지킨 직원들. 가운데 양복 입은 사람은 장병권 텔슨 대표.
2005년 파산 선고를 받았을 때 떠나지 않고 회사를 지킨 직원들. 가운데 양복 입은 사람은 장병권 텔슨 대표.
■ 파산선고 회사 3년만에 부활시킨 ‘텔슨 청원공장’

《7일 오후 충북 청원군 오창읍 전자부품 제조업체인 ‘텔슨’ 공장. 작업장 문을 열자 제품 포장에 열중하고 있는 직원들의 파란색 작업복이 눈에 들어왔다. 3차원(3D) 입체영상 제품을 생산하는 곳에선 우주복을 입은 직원들도 보였다. 조용했다. 겉모습만 봐선 2005년 파산 소용돌이를 전혀 눈치 챌 수 없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사명(社名)이 텔슨인데도 불구하고 건물에 ‘텔슨전자’라고 적혀 있는 눈물겨운 사연이 있었다.》

○ 50여 명 직원 ‘텔슨 살리기’ 나서

2000년대 초반 텔슨전자는 삼성, LG, 팬택앤큐리텔 등과 함께 주요 휴대전화 제조업체로 손꼽혔다. ‘잘나가던’ 1999년에는 연간 매출액이 3990억 원을 넘었다.

하지만 2005년 3월 21일 법원으로부터 파산 선고를 받았다.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파트너를 모토로라에서 세계 1위 휴대전화업체인 노키아로 갈아탄 게 결정적인 악재(惡材)였다. 노키아가 한국 시장에서 고전하면서 텔슨전자 사세(社勢)도 꺾이기 시작했다.

2003년 중국이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으로 몸살을 앓으면서 수출 길도 막혔다.

서울 본사 직원들은 파산 선고 직후 대부분 이직했다. 하지만 청원공장에는 100여 명의 직원이 남아 있었다.

당시 텔슨전자 청원공장장이던 장병권 현 텔슨 대표는 긴급회의를 열었다. 의외로 결론은 간단했다. ‘외부 환경이 나빠 부도를 냈지만 공장 설비와 기술은 세계적인 수준이기 때문에 회생 가능하다.’ 그때부터 장 대표를 믿은 50여 명의 공장 직원은 ‘텔슨전자 살리기’에 들어갔다.


○ 임금-퇴직금 포기하고 공장 가동

장 대표는 먼저 자본금 5000만 원으로 ‘텔슨TNT’라는 법인을 새로 만들었다. 당시 텔슨전자는 화의(和議) 및 법정관리 신청이 모두 기각됐기 때문에 법인 구실을 하지 못했다.

그는 법원을 찾아가 “텔슨전자의 공장 기계를 임차해 사용하도록 허락해 달라”고 요청했다. 판사는 “애원한다고 해도 장의사는 시신을 땅에 묻어야 하지 않느냐”며 “채권단이 허락하지 않는 한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채권 은행들을 찾아갔더니 은행은 “총부도액이 1800억 원인데 무엇을 믿고 텔슨TNT에 기계를 임대해 주겠느냐”며 “기계를 고철 값에 팔더라도 빚잔치를 하는 게 효율적이다”라고 잘라 말했다.

이때 직원들이 힘을 실어 줬다. 자신들이 받지 못한 4개월 치 임금과 퇴직금을 포기하겠다고 밝혔다. 공장 간부들도 기꺼이 “문제가 생기면 사재(私財)를 털어 메우겠다”는 각서를 썼다.

이를 본 법원과 채권단은 6개월 한시적으로 텔슨전자 청원공장의 기계를 월 1000만 원에 사용할 수 있게 해 줬다.

마지막 기회였다. 6개월 내에 회사를 살리지 못하면 모든 게 끝이었다. 이때부터 임직원들은 1인 4역을 맡았다. 사무직 직원이 생산시설을 돌렸고, 간부들은 포장은 물론 청소까지 담당했다.

2005년 하반기(7∼12월)에 공장을 돌려 34억 원의 매출액에 1억 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모두들 기적이라고 말했다.

○ 옛 회사 용지-상표권 모두 사들여

올해 초 텔슨TNT는 텔슨전자의 공장 용지와 상표권까지 모두 사들였다. 그 후 회사 이름을 텔슨으로 바꿨다. 과거 OEM 생산의 명가(名家)였던 만큼 텔슨이란 브랜드는 아직 해외에서 높게 쳐 주기 때문이다.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꾸준히 늘고 있다. 미국발(發)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올해 연간 300억 원 매출액에 20억 원의 영업이익을 예상하고 있다. 지난해보다 모두 2배를 넘는다.

수십 개 기업으로부터 인수 제의도 받았다. 지금은 3D 입체영상 기술을 보유한 KDC정보통신을 최대주주로 맞은 상태다.

극심한 불황에도 성장하는 비결에 대해 장 대표는 “위기를 경험해 보니 그 무엇보다 ‘사람’이 중요하더라”며 “직원들이 뭉쳐 ‘한번 해 보자’는 열정을 갖고 있으면 어떤 어려움도 헤쳐 나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청원=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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