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코 피해 120여개 기업 내주 집단소송

  • 입력 2008년 10월 30일 03시 03분


“마을 이장이 시골총각 꼬드긴 격”

120여개 기업이 참여한 ‘환헤지 피해기업 공동대책위원회’는 29일 한국씨티 SC제일 신한 외환은행 등 13개 은행을 상대로 다음 주 키코 계약 무효를 주장하는 본안소송을 낼 계획이라며 소장을 공개했다. 공대위는 이 소장에서 자신들을 마을 이장(은행)의 꾐에 넘어간 순진한 시골 총각에 비유해 눈길을 끌었다. 다음은 소장의 비유 부분.

한 시골마을의 순진한 노총각이 만물상을 하는 마을 이장으로부터 “싼값에 롤렉스 시계(키코)를 사면 색싯감이 생긴다”는 얘기를 듣는다.

마을 대소사를 관장하는 이장에게 밉보일 수도 없고 어쩌면 결혼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그 시계를 구경하지만 시곗줄이 없어 손목에 차고 처녀 앞에서 과시할 수 없는 물건이었다. 환율이 일정 수준 밑으로 내려가면 키코 계약이 자동 파기되면서 환차익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을 이렇게 비유한 것.

이장은 그래도 명품 시계를 갖게 되는 것(제한된 구간에서 환위험 회피 효과)이라며 공짜로 시계를 줄 테니 조건을 하나 달자고 제안했다. 실현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마을 한가운데 높은 시계탑이 생겨(환율 급등) 손목시계의 필요성이 작아지면 시계탑 높이 10m마다 손목시계를 1개씩 달라는 것.

총각은 시골마을에 시계탑이 생길 리 없다고 생각했다. 또 군수와 친한 이장이 “군수가 시계탑 공사 계획이 없다고 했다”며 호언장담했다. 은행이 환율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중소기업에 환율 급등에 대한 가능성을 인식하지 못하게 했다는 의미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마을에 시계탑이 생겨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갔고 순진한 총각은 처녀에게 시계 자랑은 한 번도 해보지 못하고 거덜이 났다는 것이다.

류원식 기자 rew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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