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손 놓은 中企사장들 “환율만 쳐다봅니다”

  • 입력 2008년 9월 30일 20시 16분


미국 하원의 구제금융안 부결 소식이 전해진 30일 경기 안산시 안산공단의 한 중소기업을 찾아갔습니다. 사장 A 씨는 거의 넋이 나간 표정이었습니다. 이날 또 다시 원화 환율이 급등(원화가치 급락)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건 신경 쓸 엄두도 못 내고 환율 변동만 보고 있습니다. 손실을 만회할 생각에 또 다른 환 헤지 거래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이 회사는 올해 초 시중 은행과 2년짜리 '키코(KIKO) 계약을 맺었습니다. 어떻게든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을 줄여보겠다는 생각에서지요. 이 업체가 가입한 상품은 다른 기업들과 달리 올해에는 당장 큰 피해는 없다고 합니다.

문제는 내년입니다. 환율이 달러당 930원 이상이 되면 계약금액의 2배인 30만 달러(약 3억5700만 원)를 930원에 매도해야 합니다. 환율이 1200원 이상으로 간다면 10억 원 가량의 손실을 보게 됩니다. 지난해 순이익 3억8000만 원의 3배 가까운 금액을 날리는 셈이죠.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A 씨는 최근 또 다른 환 헤지 거래를 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는 현재 유로 선물환 거래와 엔화 변동 보험에 가입한 상태입니다.

얼핏 봐도 위험하기 짝이 없는 상품에 왜 가입했을까요? A 씨는 "은행 덕분에 기업을 키워왔는데 설마 자식을 죽이는 부모가 있을까 싶었다"고 하더군요.

은행들도 키코 계약과 반대 환 헤지 거래를 하는 바람에 별로 이익을 못 얻었다는 걸 보면 은행이 기업을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기업들에게 키코 가입을 권유한 것 같진 않습니다.

더 큰 문제는 많은 중소기업들이 키코 피해로 신규 투자 등 기업 본연의 활동을 할 의지를 잃었다는 것입니다. A 씨는 "요즘 같아선 공장 부지나 팔아버리고 한국을 떠나고 싶은 심정"이라고 하소연하더군요. 아마 비슷한 처지의 다른 중소기업들도 마찬가지 심경일 것 같습니다.

A 씨는 현재 환헤지 피해 기업들의 단체 소송에 참여할 계획이고 7월에 이미 은행을 거래 은행을 상대로 '계약무효확인 소송'을 냈습니다. 문제가 된 계약의 잘잘못은 소송을 통해 가려지겠지요. 하지만 그 때까지 중소기업이 버텨내야 할 고통이 너무 커 보입니다.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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