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정부 ‘AIG 시한폭탄’에 결국 두손

  • 입력 2008년 9월 18일 03시 01분


14일 400억달러 대출 거부→15일 파산위기 고조→16일 850억달러 구제금융 발표

AIG 파산땐 세계금융시장 대혼란 가능성

“세금들여 구제” 비판 무릅쓰고 지원 결정

폴슨 美재무 “구제금융 끝인지 알수 없어”

미국 정부는 결국 AIG를 살리는 길을 택했다. 14일 ‘민간 금융회사에 대한 구제금융은 더는 없다’며 리먼브러더스를 버렸던 미 정부는 이틀 만에 그 원칙을 깨며 미 최대 보험회사인 AIG에 대해 사실상의 구제금융을 결정했다.

부도 위기에 몰리면서 월가는 물론 전 국제금융시장의 ‘시한폭탄’으로 작용했던 AIG는 일단 정부의 도움으로 최악의 고비는 넘겼다.

하지만 앞으로 어디에서 돌발 악재가 나타날지 모른다는 점에서 아직 세계 금융시장의 안정을 기대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라는 게 월가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 긴박했던 사흘

월스트리트저널 등에 따르면 리먼브러더스의 파산 소식이 월가를 덮쳤던 지난 주말 미 정부의 관심은 AIG에 쏠렸다. 세계 130개국에서 영업을 하며 전 세계 7400만 명의 보험 계약자를 보유하고 있는 AIG가 쓰러질 경우 세계 금융시장은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유동성 위기에 몰린 AIG는 14일 자산매각을 통해 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해선 긴급자금이 필요하다며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에 400억 달러의 브리지론(1년간 담보없이 빌리는 긴급자금 대출)을 요청했다.

7일 양대 모기지 업체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 대한 2000억 달러의 구제금융 발표 이후 ‘민간 금융회사를 살리기 위해 국민의 세금을 투입했다’는 거센 비판을 받았던 미 정부는 AIG의 요청을 거부했다.

헨리 폴슨 재무장관과 벤 버냉키 FRB 의장은 대신 골드막삭스와 모건스탠리에 대해 민간 차원에서 700억∼750억 달러 규모의 긴급자금을 주도적으로 조성해 AIG를 구제해 달라고 요구했다.

15일 오전 이들로부터 ‘상황이 여의치 않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설상가상으로 무디스 등 3대 신용평가회사가 일제히 AIG에 대한 신용등급을 하향조정했다. AIG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내몰린 것.

폴슨 장관은 결국 구제금융이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마음을 돌렸다. 15일 밤 재무부와 FRB 직원들이 세부적인 구제금융 계획을 만들었다.

16일 오후 폴슨 장관과 버냉키 의장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이를 보고했다. 오후 6시 반 두 사람은 의회로 달려갔다. 상하원 지도자들을 만나 AIG에 대한 구제금융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이날 밤 FRB는 AIG에 850억 달러 규모의 대출을 제공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 AIG 뇌관은 제거됐지만…

미 정부가 AIG를 살리기로 결정한 것은 AIG가 파산할 경우 금융시장에 미치는 파괴력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AIG는 일반적인 보험사와는 달리 다른 은행과 투자자들에게 580억 달러 상당의 모기지증권을 포함해 총 4410억 달러 상당의 채권에 대한 신용부도스와프(CDS·부도위험에 대비한 보험상품)를 팔았다. AIG가 자금 조달에 실패해 파산보호를 신청한다면 이 CDS 계약을 맺은 다른 금융회사들이 막대한 손실을 보게 돼 금융시장에 핵 폭풍을 불러일으킬 것이 분명했다.

또 AIG가 발행한 채권을 보유하고 있는 머니마켓펀드(MMF)의 대규모 손실이 불가피하다는 점도 미 정부를 긴장시켰다. 은행과 자산운용사, 연기금 등 1, 2금융권을 막론하고 원금을 꼭 지켜야 하는 자금은 대부분 MMF로 굴린다. 안전성의 상징이었던 MMF가 손실을 본다면 대규모 환매사태가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일단 AIG에 대한 구제금융 결정으로 금융시장은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았다. 하지만 미 최대 저축대부업체인 워싱턴뮤추얼 등 대규모 상각과 손실로 위기 상황에 놓인 금융회사가 적지 않다. 이 때문에 금융시장의 위기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는 평가다.

미 의회 지도자들이 AIG 관련 긴급회의를 가진 뒤 폴슨 장관에게 “이번이 구제금융의 끝이라는 점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느냐”고 물었을 때 폴슨 장관은 “아직은 없다”고 답변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뉴욕=신치영 특파원 higgledy@donga.com


▲ 영상취재 : 동아일보 사진부 박경모 기자


▲ 영상취재 : 동아일보 사진부 박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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