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대비 용어만 바꿔도 기업인들 기 살아난다”

  • 입력 2008년 9월 6일 02시 58분


경제단체, 여당 지도부 간담회서 건의

“솔직히 ‘접대비’라는 말은 한마디로 기업인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용어입니다.”

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63빌딩에서 열린 경제5단체와 한나라당 지도부 간담회. 장지종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이 “접대비라는 용어는 을(乙)이 갑(甲)에게 향응을 베푼다는 부정적 의미가 있다. 명칭을 바꿔 달라”고 건의하자 대다수 경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접대는 세법상 손금(과세 표준에서 차감 항목으로 계산되는 금액)으로 정당하게 인정받는 기업 활동. 이와 관련한 비용을 미국은 ‘여가비용(entertainment expenses)’, 일본은 ‘교제비’, 한국에서는 접대비로 부른다.

기업 접대비 제도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기업인들은 “접대비란 용어 자체가 반(反)기업 정서를 부추기고 있는 데다 접대비 관련 제도도 현실성이 낮아 기업인을 잠재적인 범법자로 만들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는 접대비 용어를 바꾸면 각종 예규와 법 해석 과정에서 ‘교류’와 ‘활동’의 의미가 무엇인지 등 재해석하는 문제가 있다며 반대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중기중앙회 장 부회장은 “기업인들의 기(氣)를 살려주려고만 한다면 각종 법규의 부칙에서 명칭만 바꾸면 해결된다”며 “세정(稅政) 당국에 이를 건의했더니 세법 등 7, 8개를 바꿔야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고 말했다.

현실과 동떨어진 현행 접대비 제도도 문제로 꼽힌다.

정부는 2004년부터 법인 접대비가 50만 원 이상이면 상대방의 인적사항 등을 적은 서류를 5년간 보관해 업무 관련성을 입증하도록 하는 ‘접대비 실명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이 조항은 거의 사문화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세청 통계연보에 따르면 2004년 5조4372억 원인 법인의 접대비 지출액은 접대비 실명제 시행 직후인 2005년 5조1626억 원으로 줄었다가 2006년 5조7481억 원으로 늘었고, 지난해에는 6조 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기업들 사이에서는 접대비 한도를 피하기 위해 신용카드 여러 개로 돈을 내거나, 다음 날 같은 장소에서 다시 결제하는 ‘영수증 쪼개기’가 상식으로 통한다. 심지어 기업의 이런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사업자 등록을 2개로 해놓는 식당도 있다.

연간 매출 200억 원대인 한 기업의 사장은 “접대 상대를 밝히는 일이 부담스러워 접대비 증빙서류를 남기지 않고 있다”며 “공무원조차 영수증 쪼개기를 하는 마당에 편법을 부추기는 것보다는 접대비 한도를 늘리는 게 현실적이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재계 일각에서는 접대비 한도를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현행 접대비 한도는 매출액의 0.03∼0.20%에 기준금액(1200만 원, 중소기업은 1800만 원)을 더한 금액이다.

이와 관련해 정부 당국자들도 “기업의 총접대비 한도를 늘리는 것이 맞다”(3월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기업 접대비 한도를 대폭 확대할 필요가 있다”(7월 이석연 법제처장)며 현실적 필요성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접대비 한도 확대가 부패를 부를 수 있다”는 일부 반론도 여전히 만만찮은 실정이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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