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170달러 넘으면 한계 상황”

  • 입력 2008년 7월 16일 03시 01분


■ 정부 ‘고유가 위기관리계획’ 왜 나왔나

《기획재정부가 마련한 ‘고유가에 따른 위기관리계획(컨틴전시 플랜)’은 석유 소비량을 줄이는 에너지절약 대책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경제위기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많은 전문가가 한국이 원하는 만큼 석유 물량을 확보하지 못하거나 외환 및 금융시장이 크게 흔들릴 확률은 낮다고 보고 있지만 정부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야 할 정도로 현 상황이 심각하다고 본 것이다.》

○ 수급차질 땐 질 낮은 석유도 도입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석유 수요에서 7% 정도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상황을 수급 차질로 규정하고 있다.

한국에서 이런 수급차질은 1973∼74년의 1차 오일쇼크와 1979∼80년의 2차 오일쇼크 때 발생했다. 당시는 석유 현물시장이 발달해 있지 않아 수출입 업체끼리 미래에 일정량을 도입하기로 하는 약속하는 ‘기간계약’이 깨지면 바로 수급에 문제가 생겼다.

지금은 예컨대 중동지역에서 전쟁이 나서 기간계약이 깨져도 현물시장에서 석유를 사올 수 있어 수급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한국은 전체 석유 도입물량 중 기간계약에 의존하는 비율이 70%로 높다는 게 문제다. 기간계약을 이행하지 못하는 것 자체가 수급에 차질이 우려되는 상황이 벌어진 셈이어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도 이런 우려를 감안해 도입예정 물량에서 10% 미만이 부족한 ‘수급 우려’ 단계에선 국내에서 빠져나가는 물량을 줄이고 IEA 등에 원유 공급을 요청할 계획이다.

수급차질이 10% 이상인 단계에선 석유품질기준을 완화해 질이 다소 떨어지는 원유도 도입해 공급량을 늘리기로 했다.

가장 심각한 상황인, 수급에 30% 이상 차질이 생기면 정부 비축유뿐 아니라 민간에서 보유해온 석유를 방출한다.

○ 외환 및 금융위기에도 대비

중동산 두바이유 가격이 배럴당 170달러가 넘는 초고유가 상황이 지속되면 석유제품과 원자재 등 수입물품의 가격이 급등해 서민과 기업이 한계상황으로 내몰릴 수 있다. 이런 때는 원-달러 환율을 인위적으로 내려(원화 가치 상승) 물가를 안정시킬 필요가 있다.

정부는 이런 점을 감안해 외화 표시 외평채 발행 규모를 늘리고 민간기업의 외화 차입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외환시장에 달러 공급이 늘어 원화 가치가 상대적으로 높아져 원-달러 환율 수준이 낮아진다.

반면 외평채 발행이 늘면 국가 부채가 많아져 재정건전성이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민간기업의 외화 차입을 늘리는 방안과 관련해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외화 차입이 늘면) 가산금리가 높아지는 등의 문제가 생길 수 있는 만큼 당국이 감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금융안정 대책은 고유가 상황이 지속돼 기업이 부실해지고 증시가 붕괴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 것이다. 환매 사태가 벌어져 금융시장이 불안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시장 안정대책은 △공공부문의 주식투자 확대 △부도 우려가 큰 기업에 대한 구조조정 추진 △한국은행을 통해 금융회사에 긴급 자금 지원 등의 3가지다.

국민연금관리공단 같은 대규모 자금을 보유한 공공기관이 주식투자 규모를 당초 예정보다 늘리거나 내년 투자예정자금을 조기 집행하면 증시 안정에 도움이 된다.

또 정부는 자금이 부족해 부도를 낼 가능성이 있는 기업의 회생 가능성을 판단해 보증을 통해 자금을 지원하거나 법정관리 등의 절차를 빨리 진행해서 시장에 미치는 충격을 사전에 차단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 ‘장기 대책으로 국민 참여 끌어내야’

수급차질 대책과 금융안정 대책은 정부가 주도하는 반면 에너지절약 대책은 국민 참여를 요청하는 성격이 강하다.

유흥업소 영업시간 단축 폭을 유가 수준에 따라 점차 늘리거나 대중목욕탕에 대해 격주 또는 매주 쉬도록 하는 조치는 현행법에 근거가 있어 강제할 수는 있지만 국민들이 필요성을 절감하지 못하면 지속하기 어렵다.

기업이 에너지절약 시설에 투자한 금액 중 세액공제를 해주는 제도 같은 것이 인센티브를 통해 절약을 유도하는 예다. 정부는 현재 10%인 에너지시설 투자세액공제를 조만간 15%로 늘린 뒤 두바이유가 배럴당 170달러에 이르면 20%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은 “장기적으로 기술개발을 통해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는 등 에너지 사용체계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안이 도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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