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강 동네기업]<4>야스히사코키

  • 입력 2008년 7월 11일 03시 13분


다나카 다카시 야스히사코키 사장이 동물 실험용 인공심장과 혈액순환시뮬레이터의 작동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다나카 다카시 야스히사코키 사장이 동물 실험용 인공심장과 혈액순환시뮬레이터의 작동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日 인공심장 연구 떠받쳐 온 ‘산업계 맥가이버’

인공심장은 일시적으로 심장이 정지한 환자의 생명을 유지시키는 데 반드시 필요한 의료용품이다.

인공심장의 원리 자체는 간단하다. 공기압 등을 이용해 한쪽 밸브에서 피를 빨아들인 뒤 다른 쪽 밸브로 내보내는 것이다.

그러나 고도의 소재 및 성형 가공기술이 없이는 인공심장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 일본에서는 도요보라는 대기업이 상품화에 성공했지만 기능과 경제성 면에서 개선할 여지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수많은 일본 대학과 병원 산하 연구소, 의료 관련 기업들이 인공심장 연구에 밤낮을 잊은 채 매달리고 있다.

○ 오타 구의 ‘맥가이버’

일본의 인공심장 연구자로 한 번쯤 신세를 안 져본 이가 드물다는 야스히사코키(安久工機)는 도쿄(東京)의 ‘마치코바(町工場·동네공장) 천국’이라는 오타(大田) 구 주택가에 자리 잡고 있다.

평범한 2층짜리 단독주택을 연상시키는 야스히사코키의 본사 겸 공장 앞에는 빈 기름통과 화분, 호스 등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1층 공장과 2층 사무실은 간신히 1명이 다닐 수 있는 외부 철제 계단을 통해 이어져 있었다.

사원은 다나카 다카시(田中隆·52) 사장과 부인, 동생을 포함해 모두 6명. 오타 구의 마치코바 중에서도 작은 규모였다.

1층 공장 안에는 선반, 용접기, 프레스, 건조기 등 수동 공작기계와 기계부품이 눈을 어지럽게 할 정도로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인공심장 연구자들이 흔히 말하는 것처럼 ‘일본의 인공심장 연구를 뒤에서 떠받쳐 온 공로자’라는 흔적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러나 다나카 사장이 “지금까지 우리 회사가 개발한 제품 목록”이라며 내민 팸플릿을 보자 입을 다물기 힘들었다.

팸플릿에는 인공심장 구동장치 외에도 원자력발전용 기계부품, 인공위성 관련 부품, 기계식 혈액순환 시뮬레이터(모의장치), 정밀저항장치, 맥동시험장치, 인공혈관내구장치, 자외선조사(照射)장치, 정밀광학공구 등의 제목이 죽 나열돼 있었다.

다나카 사장은 “우리 회사에 ‘온리 원(Only One·세상에 하나뿐이라는 뜻) 기술’은 없다”며 “세상에 흔한 기술을 이용하지만 기술의 조합 방식이나 그 결과물인 제품이 ‘온리 원’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이 회사가 만드는 제품의 약 90%는 대학 등으로부터 주문받은 연구용 시제품(試製品)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다나카 사장은 “이는 우리 회사가 창업 이후 줄곧 고수해 온 전통”이라고 덧붙였다.

○ 대기업의 고민도 척척 해결

오타 구의 평범한 마치코바에서 일하던 다나카 사장의 부친(2005년 작고)은 1969년 지인에게서 ‘특별한’ 제안을 받았다.

와세다(早稻田)대와 도쿄여자의대가 인공심장 연구에 뛰어들려고 하니 독립된 회사를 만들어 참여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제안을 수락한 다나카 사장의 부친에게 주어진 역할의 절반은 ‘교육자’였다.

그는 학생들이 그려온 설계도에 따라 시제품을 제조해 주는 한편 공학의 기초를 가르쳤다. 그가 이렇게 해서 길러낸 ‘제자’는 700여 명. 이들 중 상당수가 대학교수, 병원연구소의 중견간부 등으로 성장해 인공심장 연구의 ‘최전선’에서 활약하고 있다.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다나카 사장은 부친의 뒤를 잇기 위해 ‘국립순환기병(病)센터’에 들어가 5년간 인공심장에 대해 체계적인 연구경력을 쌓았다.

이 덕분에 부친이 작고한 뒤에도 야스히사코키는 동물실험용 인공심장과 혈액순환 시뮬레이터 제조에서 선두 역할을 하고 있다.

야스히사코키가 인공심장 외의 분야에서도 ‘해결사’로 이름을 얻은 계기는 1989년 1월. 당시 도쿄전력 후쿠시마(福島) 제2원자력발전소 3호기에서 재(再)순환펌프 파손 사고가 발생했다.

도쿄전력의 기술진은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내시경카메라를 장착한 탐사로봇을 20m짜리 파이프를 통해 보내려 했지만 허사였다. 파이프가 안이 위아래로 굽어 있어 로봇이 진행하지 못했기 때문.

이들이 5개월을 허송한 끝에 도움을 청한 곳이 야스히사코키였다.

다나카 사장과 그의 부친은 사찰에서 쓰는 ‘염주’의 원리를 응용해 3주 만에 도쿄전력의 고민을 해결했다.

○ “돈보다 큰 보상도 있다”

‘야스히사코키에 가면 어떻게든 해답을 찾아줄 것’이라는 소문을 듣고 이 회사를 찾는 고객은 다양하다.

구리타 아키요시(栗田晃宜·50) 씨는 10여 개 기업에서 문전박대를 당한 끝에 4년 전 물어물어 야스히사코키를 찾아온 사례. 가가와(香川) 현의 맹(盲)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치는 그의 주문은 시각장애인용 ‘붓펜’을 개발해 달라는 것이었다.

다나카 사장은 3년을 매달린 끝에 지난해 6월 마침내 밀랍을 물감 대용으로 사용하는 시제품을 완성했다. 형상기억합금과 센서, 온도조절기 등 갖은 장치를 활용해 내놓은 결과물이었다.

다나카 사장은 “원가가 2만 엔가량이어서 상품화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다”면서 “하지만 기업이라고 해서 꼭 돈이 되는 일만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다나카 사장은 자신이 만든 시제품을 이용해 맹학교 학생들이 그린 그림과 감사편지를 어떤 보물보다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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