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퉁들의 영토확장

  • 입력 2008년 6월 23일 02시 57분


《경기 남양주시에서 떡집을 하는 백모(53) 씨는 최근 황당한 일을 겪었다. 한 남자가 전화번호부 회사 직원이라며 전화로 ‘지난해 광고 문구에서 수정할 사항이 없는지’를 물어왔다.

별 생각 없이 “그렇다”고 대답한 백 씨는 얼마 후 가게 광고가 실린 전화번호부가 자신이 알고 있던 전화번호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항의전화를 했다.

하지만 이미 광고비를 해당 업체에 지출한 뒤였다. 시계나 의류 등 주로 해외 ‘명품(名品)’ 등을 대상으로 활개 치던 ‘짝퉁’ 브랜드가 생활서비스 업종으로까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피해 기업들은 ‘생활 속 짝퉁 업체’들이 인터넷 공간에서 더욱 기승을 부리는 점에 주목하면서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

꽃배달-대리운전도 가짜 브랜드… 제조업에서 생활서비스까지 활개

○일상 속에 파고든 ‘짝퉁’

한국전화번호부㈜는 1966년 이후 KT(옛 한국통신)에서 전화번호 데이터를 받아 전화번호부를 발행하고 있는 국내 유일의 공식 전화번호부 발행업체다.

이 회사의 소비자상담센터는 최근 월평균 150건의 전화번호부 광고 피해 사례를 접수하고 있다. 대부분 전국 각 지역에 난립한 ‘짝퉁’ 전화번호부 발행업체에 속아 광고비를 지급했다는 내용이다.

이영진 한국전화번호부 본부장은 “‘짝퉁’ 전화번호부 업체들은 전국적으로 200여 개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최근 이들 업체의 변칙 광고 영업으로 피해를 호소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외식 프랜차이즈 업체인 ‘놀부’도 상표 침해로 인한 피해 건수만 20건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업체의 브랜드가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끌면서 유사한 이름을 사용한 업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놀부’ 이름을 붙인 PC방, 노래방 등도 등장했다고 한다.

결혼정보업체 듀오도 업체명에 ‘듀오’를 넣은 유사업체로 골치를 썩고 있다. 특히 이들 결혼정보업체에는 고객들이 개인 신상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에 자칫 추가적인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이 듀오 측의 설명이다.

○‘짝퉁’ 세상 인터넷

회사원 천모(43) 씨는 최근 회사에서 야근하다가 ‘장충동족발’을 인터넷으로 검색해 포장배달을 주문했다. 전화를 받은 상대방의 목소리가 왠지 꺼림칙했지만 별 의심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배달돼온 족발 포장을 뜯자 역한 냄새가 나 도저히 그대로 먹을 수 없었다. 천 씨는 전화로 항의했지만 상대방은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1991년 상표등록을 하고 대전에 본사를 둔 ‘장충동왕족발’은 최근 자구책의 하나로 인터넷 홈페이지 주소를 기존 장충동왕족발에서 전화번호 숫자로 아예 바꿨다.

KT의 짝퉁 피해도 만만치 않다. 대리운전업체나 꽃배달 업체 등의 ‘KT’ 또는 ‘케이티’라는 이름이나 로고를 사용하는 짝퉁 KT 브랜드 업체는 540여 개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주로 인터넷을 통해 영업을 하기 때문에 단속이 쉽지 않은 것이 이 회사의 고민이다.

KT 측은 인터넷 홈페이지에 16개 자회사 명단을 싣고 이들 외에 KT가 붙은 업체는 자사(自社)와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고지한 데 이어 최근에는 유사 업체로부터 피해를 보지 않도록 주의해달라는 신문광고까지 싣기도 했다.

KT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실태 조사와 함께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업종이 전혀 다른 경우 법적인 제재 수단이 없어 답답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생활 속 유사 브랜드 사례
기존 브랜드유사 브랜드
한국전화번호부㈜한국OO전화번호부, 국내OO전화번호부, KTOO 전화번호부 등
장충동왕족발OO장충동족발 등
놀부놀부OOPC방, 놀부OO노래방
KTKTOO꽃배달, KTOO대리운전, KTOO 건설 등
SK엔카엔카OO중고차, 엔카OO자동차 등
듀오듀오OO정보센터, 듀오OO코리아 등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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