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에서 ‘돈’으로… 부동산개발 시장 권력 이동

  • 입력 2008년 6월 3일 02시 54분


은행-증권사 부동산개발업 진출 붐

공사비 절감 금융상품 다양화 이점

개발방식 ‘금융중심 선진국형’ 변화

위기 느낀 건설업계선 금융업 노크

중견 건설업체 개발팀에서 잘나가던 박모(43) 차장은 최근 증권사로 자리를 옮겼다. 같이 근무하던 동료 2명도 지난달 증권사와 보험사로 갔다. 업무는 부동산 개발 그대로다.

A 차장은 “앞으로 금융회사가 부동산 개발업을 주도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먼저 자리를 옮겼다”고 말했다.

2일 금융권과 건설업계에 따르면 국내 부동산 개발의 중심이 시행사나 건설업체에서 금융권으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다. ‘펀드 신화’를 만들어낸 미래에셋이 부동산 개발업에 진출키로 한 데 이어 증권·보험사들이 자체 부동산 개발 능력을 대폭 강화하고 나섰다.

금융감독원 비은행감독국 관계자는 “과거 은행권이 도맡아온 개발사업 대출에 증권·보험사들의 참여가 늘고 있다”며 “이들은 최근 2년 동안 10조 원 정도를 부동산 개발에 직접 또는 간접 투입했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08년 2월 말 기준으로 금융권의 부동산 개발 관련 대출(프로젝트 파이낸싱) 잔액은 최근 2년 새 20조 원 가까이 늘어 89조3000억 원에 이른다. 이는 증권·보험업계가 부동산 개발 업무를 크게 늘렸기 때문이다.

특히 부국증권, 한국투자증권, 우리투자증권, KB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 등은 부동산 분야에서 투자은행(IB)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은 시행사에 대출이나 시공사를 알선하고 대출금의 0.5∼1%를 수수료로 받거나 자체 자금을 개발사업에 투자하기도 한다.

지난해 증권·보험사들이 부동산 개발에서 얻은 이익은 1000억 원을 웃도는 것으로 알려졌다. 와이컨설팅 황용천 사장은 “미분양이 쌓이면서 시행사와 건설사의 수익이 줄고 위험 부담만 커진 반면, 금융권은 대출 능력과 시공사 보증을 바탕으로 이익을 확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금융권은 최근 개발사업 전문 인력을 잇달아 채용하고 있다. 올해 들어 개발업체나 건설업체에서 금융권으로 옮긴 전문 인력은 20명을 웃돈다. 사업성 분석 능력을 강화해 부동산 개발 사업의 이익을 늘리기 위해서다.

부동산 개발업체 설립을 추진 중인 B증권 관계자는 “자금력을 가진 금융권이 개발 주체가 되면 공사비를 낮출 수 있고, 개발사업을 근거로 다양한 금융상품을 팔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 은행검사1국 박상춘 수석검사역은 “개발업체가 자기 돈을 거의 갖지 않은 채 시공사 보증, 금융권 대출 등을 통해 사업을 하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금융권이 사업 가치와 현금 흐름 등을 평가해 개발사업에 자금을 직접 투입하는 게 선진국의 부동산 개발 방식”이라고 말했다.

건설업계는 이런 흐름에 대해 “건설사가 금융권의 사실상 하청업체로 전락할 수 있다”며 위기감을 나타내고 있다. 위기의식이 커지면서 포스코건설 쌍용건설 대우건설 한일건설 삼환기업 등이 올해 들어 사업 목적에 금융 분야를 추가했다. 종합금융업, 증권업, 자산관리 등을 사업 목적에 추가한 것.

부동산 개발 및 자문업체인 내외주건 김신조 사장은 “자금력, 리스크 감당능력에서 시행사나 건설업체보다 뛰어난 금융회사가 부동산 개발을 주도하게 될 것”이라며 “건설업의 효율성이 증대돼 분양가를 낮추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은우 기자 lib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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