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삼각합병’ 허용 1년… “黑船은 허풍이었나”

  • 입력 2008년 5월 6일 03시 00분


“흑선(黑船)이 몰려온다.”

지난해 이맘때쯤 외국 자본의 적대적 인수합병(M&A) 위협론이 비등하면서 일본 경제계 일각에서 나왔던 말이다.

일본 경제계가 1853년 에도(江戶)막부를 강제 개항시켰던 매슈 페리 제독의 ‘검은 증기선’에 비유할 만큼 충격적인 조치로 받아들인 ‘삼각합병’이 허용된 지 1년이 지났다.

삼각합병이란 모기업(A)이 자회사(B)를 통해 C기업(C)을 사들이면서 C사의 주주에게 그 대가로 A사의 주식을 할당하는 것을 말한다. 즉, 자사주만 있으면 현금 없이도 다른 기업을 M&A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

미국과 유럽의 기업들은 일본 기업들에 비해 시가총액 규모가 월등히 크기 때문에 삼각합병이 허용되면 일본 기업을 적대적으로 M&A하려는 사례가 크게 증가한다는 게 일본 경제계의 예상이었다.

이런 ‘외자 위협론’에 겁을 먹은 기업들은 너도나도 적대적 M&A에 맞설 수 있는 방어책을 도입하기에 바빴다.

M&A 컨설팅 회사인 레코프에 따르면 삼각합병 허용 전인 2006년 말 방어책을 도입한 기업은 176개사였지만 지난해 말에는 413개사로 급증했다. 일본 기업끼리 상대방의 주식을 서로 사두는 사례도 크게 늘었다.

그러나 일본 경제계가 우려했던 ‘흑선’은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것이 마이니치신문의 보도다.

보도에 따르면 삼각합병이 허용된 이후 1년 동안 실제로 이 제도를 이용해 외국 기업이 일본 기업을 사들인 사례는 단 1건에 불과했다고 한다.

미국의 대형금융그룹인 씨티가 자회사를 통해 닛코코디얼그룹을 인수하면서 이 회사의 주식을 100% 삼각합병 방식으로 인수하기로 한 것.

더구나 이는 일본 경제계가 우려했던 적대적 M&A가 아닌 양사 경영진의 합의 아래 이뤄진 우호적 M&A였다.

삼각합병 허용으로 인한 외자위협론은 과민반응이자 기우(杞憂)였음이 1년 만에 입증되자 두껍게 껴입었던 갑옷(M&A 방어책)을 벗어던지는 기업이 줄을 잇고 있다.

카탈로그를 이용한 통신판매업체인 닛센홀딩스와 콘택트렌즈 등을 판매하는 일본옵티컬은 1년 전에 도입한 방어책을 백지화하기로 3월 주주총회에서 결정했다.

초고속인터넷 통신망 접속회사인 e액세스도 6월 기한이 끝나는 방어책을 연장하지 않기로 했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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