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 않는 러시아인…현금 두둑한 ‘붉은 지갑’을 열어라

  • 입력 2008년 4월 28일 02시 59분


《러시아 모스크바 거리는 자동차로 넘쳐났다. 인구 900만 명인 모스크바에 등록된 차량대수는 1000만 대다. 벤틀리, 마세라티 같은 최고급 자동차 뒤에 출고된 지 10년은 넘었을 듯한 라다, 지굴리 등의 러시아산 소형차들이 툴툴거리며 따라가는 것은 어색하지 않은 풍경이다. 빠른 속도로 경제가 성장하는 러시아를 공략하려는 한국기업들의 움직임도 눈에 띄었다. 》

○러시아 신흥 중산층 새로운 소비 주체로

모스크바 거리는 러시아의 오늘을 말해준다. 러시아인들은 현지 자동차인 라다승용차에서 내려 유럽과 미국, 한국, 일본의 ‘고급 승용차’로 갈아타고 있다.

최근 몇 년간 러시아 경제는 급성장했다. 2003년 이후 거의 매년 평균 7%가량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보인다. 국제유가가 오르면서 유전이 많은 러시아에는 ‘오일머니’가 넘쳐난다. 외국인 투자도 늘고 있다.

이런 성장을 등에 업고 나타난 것이 신흥 중산층이다. 주로 모스크바에 몰려 있는 신흥 중산층의 명목상 월평균 소득은 1000∼2000달러지만 이들의 소비는 웬만한 선진국 중산층 못지않다. ‘회색 임금(국가에 세금 신고를 하지 않는 임금)’ 등의 부수입이 많은 데다 일단 소득이 생기면 저축을 하지 않고 써버리는 사람도 적지 않다.

우리은행 모스크바법인의 정동식 법인장은 “1998년 러시아가 모라토리엄(대외채무 지불유예)을 선언한 뒤 시중은행이 신뢰를 잃었다”며 “인구의 80% 이상은 은행계좌가 없다”고 말했다.

○ 현대차 삼성TV 중산층에 인기

KOTRA 모스크바무역관 김정훈 과장은 “모스크바의 평균 임금상승률은 매년 25%”라고 설명했다. 그만큼 구매력이 커지는 셈이다. 더구나 러시아에는 소비재산업 생산기반이 거의 없다. 글로벌 소비재기업들이 눈독을 들이는 이유다.

한국에서는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오리온, 한국야쿠르트 등의 한국 기업이 진출해 있다. 유통 기업으로는 롯데백화점이 유일하게 현지에 법인을 세웠다.

신흥 중산층의 첫 구매목표는 ‘수입 자동차’다. 현대자동차 모스크바법인 조경래 법인장은 “중산층이 러시아산 차를 바꿀 때 선호하는 차종으로 현대차 도요타 포드가 꼽힌다”라고 설명했다. 현대차는 2월까지 러시아 수입차 판매 1위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파워’도 두드러진다.

4월 현재 삼성전자 액정표시장치(LCD)TV의 러시아 시장점유율은 42.9%로 독보적이다. 삼성전자 러시아법인 임선홍 상무는 “중산층 소득이 늘어나면서 TV 교체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LG전자는 2006년 9월 모스크바 인근에 현지 가전공장을 설립했다. 삼성전자는 휴대전화 부문에서도 러시아 축구대표팀 감독인 거스 히딩크 감독을 광고 모델로 기용해 노키아와 경쟁하고 있다.

○ ‘능력보다 더 쓰는’ 러시아 소비시장 매력적

러시아 내수시장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유통업계다. 미국에 거주한 경험이 있다는 모스크바 시민 리사 쿠라코바(23·여) 씨는 “미국인은 필요한 물건을 사지만 러시아인들은 보여 주기 위해 옷이나 차를 산다”고 말했다. 러시아인들이 ‘과시’ 또는 ‘스트레스 해소’ 차원에서 소비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KOTRA 모스크바무역관의 분석이다.

롯데백화점을 비롯한 해외 유통회사가 러시아 전망을 밝게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모스크바에는 현재 6개의 고급 백화점과 56개 쇼핑몰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 스토크만, 이케아 등 외국자본도 있고 춤, 굼 등 러시아 토종 기업도 있다.

롯데백화점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독특한 마케팅 전략을 펼치고 있다. 러시아의 백화점이 주로 패션 위주인 데 비해 롯데백화점은 패션과 잡화, 가전, 식품매장을 함께 갖춘 한국식 ‘원스톱 매장’을 열었다.

김선광 롯데백화점 모스크바법인장은 “모스크바 소비자들은 ‘숍인숍’ 스타일의 백화점이나 쇼핑몰에 익숙해 있지만 ‘원스톱 쇼핑’의 편리함을 알게 되면서 고객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모스크바점의 객 단가(소비자 1인당 구입액수)가 서울 소공동 본점보다도 많다”며 “모스크바 2, 3호점은 물론 러시아 제2도시인 상트페테르부르크에도 지점을 낼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모스크바=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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