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건설 사상최고, 국내 훈풍은 왜 없을까

  • 입력 2008년 4월 13일 16시 53분


한국 해외건설이 사상 최대 호황을 맞고 있다.

지난해 해외 수주는 398억 달러로 이전 최대였던 2006년 165억 달러의 두 배를 웃돈다. 올 1분기 수주액, 올 연간 예상 수주액 등도 '사상 최고'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그런데 허전하다. 건설업계의 수익성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해외건설 덕분에 국내 경기가 좋아졌다는 얘기도 들리지 않는다. 무엇보다 해외 건설현장에서 목돈을 벌어왔다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해외 건설 훈풍이 피부로는 느껴지지 않고 있다.

1970년 말~1080년대 초나 지금이나 해외건설 호황이 '오일 달러' 덕분인 것은 비슷하다. 그 새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해외 상주 인원 17만 명에서 6000명으로 감소

GS건설은 2006년 중동의 오만에서 아로마틱스 석유화학 플랜트 공사를 12억 달러에 수주했다. 대규모 공사로 현장에 상주할 인력만 3500명에 달한다.

그러나 GS건설이 현장에 파견한 한국 직원은 공사관리, 구매 등의 100명 남짓이다. 나머지는 필리핀, 방글라데시 등 출신으로 단순 노무자들이다.

다른 건설업체의 해외 현장도 마찬가지다.

삼성건설이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짓는 세계 최고(最高) 빌딩 '버즈 두바이' 현장에도 한국 인력은 수십 명에 불과하다.

대우건설 이상권 자금팀장은 "1983년 리비아에서 일할 때 한국 근로자를 실어 나르기 위해 매주 전용기를 띄웠다"며 "현지 한국인이 너무 많아 리비아 인민위원회에서 '한국 근로자가 폭동을 일으키면 위험하다'며 인력 제한에 나설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이런 변화는 한국 건설 인력의 역할이 바뀌었기 때문.

해외건설협회 김태엽 기획팀장은 "해외 건설현장에서 한국인의 역할은 20~30년 새 단순 노동에서 전문분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해외건설이 호황을 누리던 1981~1983년 당시 해외 현장에 상주하던 한국 인력은 17만 여명이었다. 지금도 사상 최대 호황이지만 해외 현장의 한국 인력은 고작 6000명 남짓이다.

●해외 근무 혜택은 줄고 물가는 급등

대림산업 정상권 부장이 1985년 리비아 현장에서 평사원으로 일할 때 매달 80만 원을 받았다. 물론 야근 수당 등을 합친 금액이다.

당시 국내에서 근무하던 동기들의 월급은 30만~35만 원 선. 같은 경력의 직원이 해외에서 근무하면 평소 월급의 2.5배를 받은 셈이다.

이 같은 혜택은 당시 해외 건설 현장의 근로조건이 매우 열악했던 까닭이다.

힘들었던 만큼 보상은 컸다. 정 부장은 "리비아에서 일할 당시 서울 잠실주공아파트 한 채 값이 1500만 원이었다."며 "단순 노무자들도 중동에서 3년 정도 일하면 이런 아파트 한 채를 살 있었다."고 말했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그 새 물가는 급등했지만 해외 근무의 혜택은 줄었다.

GS건설에 따르면 과장급이 해외 현장에서 근무하면 한국 근무 때보다 연간 2000만 원을 더 받는다. 해외에서 3년 동안 일해도 더 쥐게 되는 돈은 6000만 원으로 서울의 웬만한 전세금도 안 된다.

●해외건설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 급감

해외건설협회와 무역협회 등에 따르면 1981년 수출액 대비 해외건설 수주액 비중은 64.6%였다. 외화벌이에서 해외건설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던 것.

이런 비중은 지난해 10.7%로 감소했다. 지난해 해외 수주액은 398억 달러였으나 매출액은 180억 달러 정도다. 수출액 대비 해외건설 매출액은 5%에도 미치지 못한다.

한국의 경제규모가 커지고, 자동차 전자 등 다른 분야가 성장하면서 건설의 비중이 줄었다는 얘기다.

건설협회에 따르면 최근 4년 간 건설업계의 영업이익률은 5%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김태엽 팀장은 "1970년 대 말에는 해외 비중이 매출의 70~80%인 업체도 많았다"며 "요즘은 개별 기업에서 해외 비중이 전체의 30% 남짓이어서 해외 수주가 늘어도 전체 수익성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A건설 사장은 "국내 건설경기 침체 탓에 수익성이 낮은 해외공사를 따내기도 한다."며 "그래도 올 한해 건설업계가 해외건설 인력 1500명을 새로 뽑은 건 국내 고용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우기자 libra@donga.com 이태훈기자 jeffle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