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돕는다며 오라가라 귀찮게만…”

  • 입력 2008년 3월 29일 02시 59분


김종갑 하이닉스사장 ‘31년 공직시절’ 반성문 화제

《“기업을 도와준다며 오라 가라 했습니다.” 31년간 공직에 몸담다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로 변신한 김종갑(사진) 하이닉스반도체 사장이 자신의 관료생활을 되돌아보는 공개 반성문을 내놓아 눈길을 끈다. 29일 충남 천안시 공무원연수원에서 열리는 지식경제부 연찬회에서 ‘지식경제부에 바란다’는 주제의 특강을 하는 김 사장은 28일 미리 배포한 강연 자료에서 자신의 공직 경험을 바탕으로 공무원들의 6가지 잘못을 지적했다.》

김 사장은 자신의 친정 격인 지경부 공무원들에게 먼저 산업현장을 이해하지 못한 채 정책을 입안한 자신의 허물을 털어놨다.

“공직에 머물면서 1000개 이상의 기업을 방문하고 수없는 기업인을 만났지만 겉핥기식 이해에 그쳤을 뿐 기업을 이해하려 하기보다 정부의 생각을 주입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그는 또 “잘하는 기업은 정부에 부탁할 일이 별로 없는 법인데 괜히 기업들을 오라 가라 귀찮게 했다”며 “갑(甲)의 위치에서 행동하고 관료의 높은 문턱을 낮추지 못했음”을 후회했다.

“산하기관을 너무 많이 만들었다”는 자책도 했다. 산하기관이 정부보다 더 관료적이고 기업에 부담을 주는데도 위인설관(爲人設官)식으로 자리만 많이 만들었다는 것이다.

김 사장은 “과도한 사전적 규제, 불투명한 기준이 많지만 규제 완화는 숫자 채우기에 급급했고, 기업들의 잘못을 철저히 응징하지 못한 점도 문제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 밖에 △산학(産學)협력과 출연(出捐)연구기관의 생산성 제고 등 경쟁력 제고를 위한 기반 조성에 미흡했고 △발표만 하고 흐지부지되거나 과도한 행사를 벌이는 ‘보여주기 행정’에 급급했다고 고백했다.

김 사장은 “새 정책을 더 만들지 말고 대부분 기업에 맡겨 달라. 산하기관 통폐합이 부처 통폐합보다 중요하다”며 퇴직관료 자리 없애기에 후배들이 나서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김 사장은 행정고시 17회에 합격한 뒤 산자부 산업정책국장, 차관보, 특허청장을 지낸 경제관료 출신. 지난해 2월 퇴임한 뒤 공기업 등 산하기관으로 가지 않고 하이닉스반도체 사장 공모(公募)를 거쳐 CEO로 일하고 있다.

김창원 기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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