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드라이하게… 더 붉게” 독일 와인 ‘조용한 혁명’

  • 입력 2007년 11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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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대표적 와인 산지인 라인가우 지방 ‘쾨글러’ 바인구트(와인 농장)의 첨단 와인 셀러(저장고). 이중 오크통의 온도를 컴퓨터를 이용해 항상 10∼12도로 유지하고 발효기간을 통상 2, 3일에서 1주일로 늘려 향과 맛이 풍부한 와인을 빚어 낸다. 라인가우=이진영 기자
독일의 대표적 와인 산지인 라인가우 지방 ‘쾨글러’ 바인구트(와인 농장)의 첨단 와인 셀러(저장고). 이중 오크통의 온도를 컴퓨터를 이용해 항상 10∼12도로 유지하고 발효기간을 통상 2, 3일에서 1주일로 늘려 향과 맛이 풍부한 와인을 빚어 낸다. 라인가우=이진영 기자
독일의 요한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한 데는 와인 양조장의 공이 컸다. 그는 와인농장에서 포도즙을 짜는 데 사용되는 압착기에 착안해 구텐베르크 성서를 찍어내는 데 성공했다.

7∼11일 방문한 독일 마인츠 시에선 인쇄술과 와인 양조장의 각별한 인연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곳 구텐베르크 박물관에 보관된 나무로 짠 인쇄기는 옛날 와인을 빚던 수도원에 전시된 압착기와 같다.

15세기에 인쇄술의 혁명을 이끌었던 바인구트(와인 농장)에서는 지금은 와인 산업의 혁명이 진행 중이다.

독일은 ‘달콤한 싸구려 화이트와인’이라는 자국산 이미지를 떨쳐내고 드라이(달지 않은)한 고품질 와인과 레드와인 생산에 주력하고 있다.

독일 와인의 수출도 늘고 있다. 2006년 6월∼올해 5월의 수출액은 6억 유로(약 8090억 원)를 넘어서 전년(2005년 6월∼2006년 5월) 대비 26.4% 증가했다.

○드라이 와인이 대세

독일 화이트와인 하면 ‘달달함’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지금은 드라이 와인이 대세이다.

독일와인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와인 생산량은 드라이(trocken) 와인이 전체의 36.7%, 미디엄(halbtrocken) 와인이 23.1%였다. 두 와인의 생산량(59.8%)은 전체 와인의 절반이 넘는다. 와인은 L당 잔당(殘糖)이 9g 미만이면 드라이, 9∼18g 미만은 미디엄으로 분류한다.

와인협회의 수출 마케팅 담당 마누엘라 리프헨 씨는 “대량 소비를 위한 저가 와인 대신 고급(퀄리티) 와인 생산량이 늘어난 것도 한 변화”라고 설명했다. 영국 런던의 고급 레스토랑에서는 한 병에 595파운드(약 112만 원)를 호가하는 독일산 화이트와인이 팔린다.

퀄리티 와인은 대부분 손으로 수확한 포도로만 담근다. 라인가우 지역에서 바인구트를 운영하는 한스 랑 사장은 “튼실하지 못한 포도송이를 골라내지 않으면 화이트와인 특유의 풋풋한 과일향이 손상돼 ‘젖은 강아지’ 냄새가 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포도 수확은 폴란드나 포르투갈 일꾼들의 몫이다. 임금은 시간당 약 7유로.

독일 와인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2000년 3.2%에서 2005년 3.7%로 증가했다.

○레드와인 생산 비중 높아져

피노누아 도른펠더 슈페트부르군더 포도 품종을 이용한 레드와인의 생산 비중이 높아지는 것도 독일 와인 산업의 또 다른 추세이다.

1980년대 화이트와인 대 레드와인 생산 비율은 89 대 11이었으나 지난해 이 비율은 63 대 37로 바뀌었다.

레드와인 생산량이 늘어난 이유는 수요의 변화 때문. 독일 사람들도 점차 화이트와인 대신 레드와인을 찾는다. 1993년 레드와 로제와인 소비량은 32%와 10%였으나 지난해는 각각 54%와 9%로 변화했다. 독일의 가장 큰 수출 시장인 영국에서도 지난해 독일의 레드와 로제와인 소비가 각각 74%와 20% 증가했다.

레드와인 생산이 늘어나는 또 다른 이유는 기후 변화 때문이다. 와인 재배의 북방한계선인 독일의 기후가 온화해져 레드와인용 포도 품종의 재배가 가능해진 것이다.

반면 날씨가 추워야 하는 화이트와인의 최상품 ‘아이스바인’ 생산은 차질을 빚고 있다. 서리 맞은 포도송이로 빚는 아이스바인은 영하 8도의 기온이 10일 이상 지속돼야 생산이 가능하다.

2005년과 2006년 아이스바인 생산에 실패한 라인가우와 라인헤센 지역의 바인구트 주인들은 “올해 아이스바인 포도는 언제 수확하느냐”는 질문에 모두들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킬 뿐이었다.

○새로운 세대들의 새로운 실험

독일 와인 산업 성장의 걸림돌은 영세농이 많다는 점이다. 와인 재배 지역의 절반 이상이 1ha(1만 m²) 미만의 포도밭을 경작하는 영세농들이다. 햇볕이 잘 드는 비탈진 곳에 포도밭이 많아 포도 농사를 기계화하기 어려운 점도 생산비용을 높이는 요인이다.

그 대신 바인구트가 다양한 만큼 와인의 맛과 향이 다채로운 점은 장점으로 꼽힌다.

부모 세대에게서 바인구트를 물려받은 차세대 주인들은 와인 농장에서 어깨너머로 배운 기술에 와인대학에서 배운 와인학(oenology)을 접목해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다. 팔츠 지역의 랄프 안젤만 사장은 와인 셀러의 온도를 자동 조절하는 컴퓨터 시스템을 도입했다. 몇몇 바인구트에서는 값이 비싸고 품질이 고르지 않은 천연 코르크 대신 손으로 돌려서 딸 수 있는 스크루 캡이나 유리 마개를 쓰기도 한다.

드레스덴·마인츠=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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