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규제 많은 증시상장’ 기피

  • 입력 2007년 11월 16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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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차 복잡하고 불필요한 경영간섭만 늘어”

《지난해 530억 원의 매출을 올린 기계부품 제조업체 A사는 해당 분야에서 세계시장 점유율이 30%에 이르는 알짜 기업이다. 하지만 이 회사는 증권시장에 상장(上場)할 계획이 없다. 회사 관계자는 “상장 후 경영 전략을 세울 때 외부 주주들의 간섭을 받다 보면 제대로 경영을 못할 것 같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소프트웨어 제작업체인 B사는 해외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보다는 외국에서 기업 가치를 더 높게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기업 실적이 좋은데도 신규 기업공개(IPO)를 꺼리는 비(非)상장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증시를 통한 자금 조달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기업이 많은 데다 상장 이후의 각종 규제와 간섭에 진저리를 내는 대주주가 적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 신규 상장 금액은 오히려 줄어

15일 한국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2002년 말 627.55이던 코스피지수는 올해 10월 말 현재 2,064.85로 3.3배로 올랐다.

그러나 코스피시장의 상장 기업은 683개에서 742개로 8.6%(59개) 늘어나는 데 그쳤다. 특히 연간 신규 상장금액은 2002년 5조9698억 원에서 작년에는 2조6681억 원으로 55.3%(3조3017억 원) 줄었다.

반면 아시아 지역 거래소의 신규 상장 공모 금액은 2002년 250억 달러(약 22조5000억 원)에서 지난해에는 3.6배인 910억 달러로 늘었다.

또 금융 허브를 지향하는 런던, 뉴욕, 싱가포르 등의 증권거래소는 외국 기업 상장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다.

2004년 19억 달러였던 런던거래소의 외국 기업 신규 상장 규모는 지난해 220억 달러로 10배 이상 성장했다.

한 경제전문가는 “최근 몇 년 동안의 전반적인 주가 상승은 비상장 우량기업의 상장 기피로 증시 수급 측면에서 ‘수요 초과’가 이어진 데도 상당한 원인이 있다”고 분석했다.

○ 까다로운 상장 요건

상장을 꺼리는 기업들은 상장 절차가 복잡한 데다 굳이 외부 자금을 조달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또 상장 기업에 대한 유무형의 각종 간섭과 규제, 이에 따른 경영권 행사 위축도 기업공개를 기피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한국증권연구원이 최근 비상장법인 1433개사를 대상으로 상장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 289개사 가운데 22.6%는 ‘자금 조달이 필요하지 않아서’, 7.0%는 ‘복잡한 상장 절차 때문’이라고 답했다.

실제로 한국은 상장을 하려면 15개 항목의 조건을 통과해야 하고 상장 심사에도 3개월이나 걸리지만 미국이나 홍콩은 3주면 심사가 끝난다.

한국증권연구원 강형철 연구위원은 “대주주들이 비용과 효율을 생각하면 굳이 복잡한 절차를 거쳐 상장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며 “상장하면 외부 간섭이 늘고 경영권 위협 리스크가 생길 것이라는 걱정도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몇 년 전 코스닥시장에 상장한 C사의 임원은 “사업계획이 조금이라도 지연되면 실패로 생각하는 외부 주주들이 주식을 팔거나 항의해 와 상장 포기까지 생각한 적도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상당수 비상장기업 대주주는 “기업공개를 해봐야 피곤한 일만 늘어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하지만 수익 기반이 탄탄하고 장래 성장 가능성이 큰 기업의 상장 기피는 장기적으로 한국 증시 및 경제 발전에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 연구위원은 “상장 활성화는 자본시장 발전의 첫걸음”이라며 “상장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기업에 대한 불필요한 정부 및 사회적 간섭부터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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