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경영]사회공헌 업그레이드 고용+봉사 두 토끼 잡는다

  • 입력 2007년 1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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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를 보내드립니다

SK ‘행복도시락’-교보생명 ‘간병인 재단’ 잔잔한 감동

《어쩌면 그녀 자신이 침대에 누워 있는 환자일 수 있었다.

그보다 더해 이미 땅 속에 묻혀 있는 운명일 수도 있었다.

2일 가을 햇살이 드는 병실에서 환자를 쓰다듬는 이필혜(48) 씨의 손길은 능숙했다. 가냘픈 몸매였지만 의식이 없는 환자를 뒤척여 주는 일도 가뿐히 해냈다. 식사 시간이 되면 음식과 음료수를 복부에 연결된 호스를 통해 넣어 주고, 배변을 받아내는 일도 그녀의 몫이었다.

간병활동은 하루 3교대로 돌아간다. 낮에는 그녀를 포함한 2명의 간병인이 5명의 할머니 환자를 돌본다. 모두 휠체어에 의지하는 환자다.

이 때문에 환자가 화장실을 가거나 하루에 2번 있는 재활치료를 위해 이동할 때면 간병인의 할 일이 많아진다. 의식이 없는 환자도 1명 포함돼 있다.

점심시간도 제대로 챙기기 힘들 만큼 항상 움직여야 하는 일과다.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그녀는 이 일이 즐겁다.

박애정신이 투철해서도 아니고 남을 돕는 일을 선천적으로 좋아해서도 아니다.

중학교 3학년인 아들을 포함한 세 식구의 소중한 생활비가 자신의 일에서 ‘안정적’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48년 인생에서 처음으로 하는 직장생활이다.

4년 전 죽을 결심을 할 정도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던 이 씨가 지금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일자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직장은 ‘다솜이 재단’이다. 교보생명이 사회공헌활동의 일환으로 2003년 3월에 만든 ‘교보다솜이 간병봉사단’이 모체다.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이 종이에 물이 스며들 듯 조금씩 사회에 녹아들고 있다.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이웃과 상생(相生)할 수 있도록 더욱 정교한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곳이 늘고 있다.

또 단순히 돈이나 물자를 내놓는 기부형에서 재능과 시간을 나누는 참여형 활동도 늘고 있다.》

○ 소중한 일자리

‘상생경영’ 기사목록

▶ 사회공헌 업그레이드 고용+봉사 두 토끼 잡는다

▶ 특별기고/사회공헌활동 활성화가 곧 국가경쟁력

▶ 현금 기부 벗어나 몸으로 뛰는 참여형으로 변한다

▶ SKT 대학생봉사단 “중국서도 봉사는 계속된다”

▶ 장애인이 돈 벌어 장애인 고용해요

▶ “사내 수유실은 엄마-아가 행복방”

▶ 매달 1000원씩 자동이체 결식아동 지원

▶ 환경 관련 우량기업 발굴, 적극 투자

▶ 전공 살려 맞춤형 사회봉사

▶ 현지정부 - NGO와 손잡고 해외 공익사업

이 씨는 4년 전 자신이 살고 있는 인천 부평구의 한 동사무소를 찾았던 날을 잊지 못한다. 전세보증금을 빼내 시작했던 남편의 자영업이 실패해 쌀을 살 돈도 구하지 못하던 때였다. 남편의 가출과 이혼의 고통도 겪었다. 죽으려고 작정했다가도 아들 때문에 마음을 되돌린 것이 이미 수차례였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 받기 위한 걸음이었지만 자존심만 상하고 돌아왔다.

“떼어오라는 서류는 어찌 그리 많은지…. 막상 학교에 알려지면 사춘기에 접어드는 아이에게 영향을 미칠까 두렵기도 하고….”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해지는지 어느새 눈시울이 붉어졌다. 동사무소에서 건네받은 것은 차상위 계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자활후견기관의 전화번호였다. 그곳에서 간병인 활동을 시작해 지금의 재단으로 소속을 바꿔 인천 부평구의 고려수재활병원에서 일하고 있다.

이 씨의 직장은 퇴직금이 쌓이는 정식 일터다.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일반 직업소개소를 통해 간병인으로 일하면 생각지도 못하는 조건이다.

이 씨는 일자리를 얻었다. 동시에 기초생활수급자는 간병 비용을 내지 않고도 간병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다솜이 재단은 기초생활수급자에게 돈을 받지 않고 간병서비스를 제공한다. 초기에는 무료 간병서비스를 제공하는 간병인의 임금을 교보생명이 모두 책임지는 방식이었다. 지금은 정부의 임금 지원과 유료 서비스가 추가됐다. 그만큼 일자리가 늘었다. 2003년 20명이던 간병인 수는 현재 약 230명에 달한다.

SK의 ‘행복을 나누는 도시락’ 사업도 같은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급식이 필요한 아동과 노인에게는 무료 도시락을 제공하고, 도시락을 만들고 배달하는 일자리를 만들어 저소득층에 제공하고 있다. 9월 현재 28곳의 사업장에서 480명이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었다.

KT서포터즈, 일터서도 가정서도 변화된 ‘나’에 놀란다

○ 봉사활동의 숨어 있는 기능

사회공헌 활동에는 사람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대부분의 기업에는 수많은 봉사단체가 구성돼 있고 이들은 재능과 시간을 이웃과 기꺼이 나누고 있다.

KT가 올해 초 구성한 ‘IT서포터즈’도 대표적인 기업 사회봉사단체. 400여 명이 정보기술(IT) 교육 수요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 그들의 갈증을 풀어주고 있다.

봉사활동에 참여한 KT 직원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작은 지식이 장애인이나 노인들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에 기뻐한다. 또 자신과 그들이 같은 사회공동체 구성원으로서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더욱 놀라운 것은 봉사활동에 참여한 자신들의 변화다.

IT서포터즈 활동을 하고 있는 김재현(47) 씨는 “남 앞에서 강의를 해 본 경험이 없던 동료들이 실전강의를 통해 어느새 농담으로 교육장 분위기를 휘어잡는 단계에까지 오르곤 한다”고 말했다. 봉사활동을 통해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증대되고 있음을 느낀다는 것.

사회봉사를 경험한 직원들은 커뮤니케이션 기술, 조직 및 시간 관리 기술, 일에 대한 책임감, 기획력과 목표 설정 기술 등이 향상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직무태도 면에서는 개인의 능력과 가치에 대한 인정, 동료 직원에 대한 이해도 등이 눈에 띄게 늘어난다는 보고가 있다.

○ 신뢰와 협력의 바탕

봉사활동은 참여자의 직장생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직장 내 조직원 간에 신뢰감을 형성하고 협력적인 조직 문화를 만드는 데도 기여한다. 신뢰와 협력을 주제로 워크숍이나 연수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삼성전자 사회봉사단 정호진 부장은 “특정 부서와 함께 봉사활동에 내보내 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한다”며 “봉사활동을 조직 내 협력의 ‘윤활유’로 삼고자 하는 자발적인 움직임”이라고 말했다.

기업체 직원뿐만 아니라 다솜이 재단이나 행복을 나누는 도시락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일반 시민의 ‘사회에 대한 믿음’에도 영향을 미친다. 삶의 기반을 갖게 된 이들은 사회로 건전하게 돌아올 꿈을 꾸게 된다.

간병인 활동 덕택에 이 씨는 남편과 재결합했다. 지금 살고 있는 전셋집에서 나와 조금 나은 곳으로 옮길 계획도 가지고 있다. 사회에 대한 신뢰도 그만큼 높아졌다.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으로 인해 눈에 보이지 않는 ‘신뢰의 끈’이 두터워지고 있는 것이다. 봉사활동 연구자들은 봉사활동을 신뢰와 호의, 소속감, 네트워크 등과 같은 ‘사회자본(social capital)’을 생산하는 적극적인 요소로 파악한다.

역사철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사회자본은 경제의 효율성에 중요한 기능을 하며 안정적인 자유민주주의 발전에도 필수적인 요건”이라고 지적했다.

글=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디자인=김성훈 기자 ksh9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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