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표준은 ‘강자들의 전리품’

  • 입력 2007년 10월 22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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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8월 이동통신 분야의 국제표준을 정하는 국제전기통신연합(ITU) 무선통신 부문의 전문가 회의(WP 8F)가 서울에서 개최됐다.

회의 참석차 서울을 방문한 200여 명의 전문가는 회의 기간에 삼성전자와 KT에 이끌려 차례로 버스에 태워졌다.

버스는 이들을 태우고 회의가 열린 서울 남산 주변을 뱅뱅 돌았다. 그 사이 버스 안에서는 국산 휴대인터넷 기술인 ‘와이브로’로 인터넷을 연결하는 시연이 벌어졌다.

‘이렇게 좋은 기술인데 당연히 국제표준이 돼야 하지 않느냐’는 일종의 시위였다. 중국의 반대로 와이브로를 이동통신 분야의 국제표준으로 만드는 데 어려움을 겪자 한국 정부와 삼성전자, KT가 만든 타개책이었다.

글로벌 기업들이 기술표준을 자신에 유리한 방향으로 만들기 위해 벌이는 경쟁은 치열한 ‘영토전쟁’을 방불케 한다. 여기서 패배하면 시장에 발붙이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



○ 국가 vs 국가 - 기업 vs 기업 힘 싸움

1980년대 초반, 비디오카세트리코더(VCR) 방식을 놓고 일본의 소니와 마쓰시타가 벌인 표준 다툼은 대표적 사례다.

소니의 ‘베타맥스’는 마쓰시타의 ‘VHS’보다 기술에서 앞선 것으로 평가받았지만 표준전쟁에서 패하자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이처럼 ‘영토전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글로벌 기업들은 합종연횡을 거듭하고 있다.

‘블루레이’ ‘고화질(HD) DVD’ 등 차세대 DVD 기술표준을 놓고 소니, 삼성전자, 도시바 등이 벌이는 표준 다툼에는 이미 디즈니, 유니버설스튜디오 등 영화 제작사까지 가세했다.

이달 18일 와이브로의 3세대(3G) 표준 채택으로 2010년경 완료될 4G 통신 기술 표준 경쟁도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4G는 정지 시 초당 1Gb(기가비트), 이동 시 100Mb(메가비트) 속도의 인터넷을 제공하는 차세대 통신 기술.

표준 주도권을 놓고 삼성전자, 인텔 등이 주도하는 ‘와이맥스(와이브로의 미국 명칭)’와 퀄컴, 노키아 등이 주도하는 ‘3G LTE(Long Term Evolution)’의 대결이 뜨겁게 달궈지고 있다.

양 진영에는 이미 통신서비스, 장비 제조 등의 분야에서 각각 406개, 295개 기업이 참여하며 세를 양분하고 있다.

ITU 4G 표준화 위원회의 부의장인 위규진 전파연구소 박사는 “국제표준을 정하는 것은 국가 간 또는 기업 간의 힘 싸움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 표준이 곧 돈이 되는 시대

일본은 1990년대 독자적인 이동통신 기술인 ‘PDC’를 고집하다가 유럽표준(GSM), 미국표준(CDMA)이 양분한 글로벌 휴대전화 시장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기술의 일본’이 유독 휴대전화 시장에서는 노키아, 삼성전자, 모토로라 등에 밀리는 것도 이 이유가 크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기술을 개발해 특허를 획득하는 단계부터 표준화를 염두에 두고 움직인다.

고정완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DM)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우리 기술이 표준이 되면 곧 막대한 로열티로 이어진다. 그래서 (표준 전쟁은)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의 치열한 싸움”이라고 말했다.

김용석 기자 nex@donga.com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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