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최영찬]세계적인 농산물 브랜드 많이 만들자

  • 입력 2007년 10월 11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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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체결에 이어 한-유럽연합(EU) FTA협상이 진행되고 있어 농민들의 불안과 근심이 어느 때보다 크다. 백화점 할인점 등 대형 유통사들이 국내 농산물의 소매 유통시장을 지배하기 시작한 때는 1990년대 중반부터로 2005년 기준 대형 유통사들에 의한 농식품 유통점유율은 무려 53.9%를 기록했다. 더구나 농산물 시장 점유율 중 외식소비 비중은 48.5%, 가공식품소비는 43%에 육박한다. 농산물 시장은 가공품, 외식, 대형 할인점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돼 개별 농가의 해당 시장 진출이 어려워졌다. 연중 균일한 품질의 안전한 농산물 공급은 물론 수확 후 처리 및 가공능력이 부족할 경우 시장 진입 자체가 힘들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시장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농민들이 쏟은 노력은 눈물겹다. 1993년 500여 개에 불과하던 농업법인이 2005년 기준 5260개로 늘어났고, 공동생산과 출하를 위해 조직한 작목반만 1만6950개다. 대책 없이 시장으로 내몰린 농업인들이 힘을 모아 공동으로 유통 및 가공에 나서는 등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는 증거다. 대부분 조합법인인 이 농업법인은 점차 줄고 규모는 커지는 추세다.

경기도에서 시작된 ‘잎맞춤’, 경기도와 충북의 연합사업인 ‘햇사레’ 등 연합사업과 공동사업법인들의 성공 사례는 주목할 만하다. 처음부터 농산물의 지역적 한계를 뛰어넘어 경기도 전체를 아우르는 대규모 브랜드화를 지향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잎맞춤 배, 포도는 시장에서 30% 이상 높은 가격으로 판매되는 효과를 거뒀다. 철저한 품질관리와 광역 브랜드화를 통해 시장 교섭력과 마케팅력을 높인 결과다. 즉 출발부터 ‘규모의 경제’에 맞는 유통체계를 갖춘 것이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농산물 브랜드화를 통한 성공 사례는 농업 선진국인 덴마크, 네덜란드 등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이들의 국토는 우리나라보다 작다. 그러나 덴마크의 대니시크라운 양돈조합은 한 해 8조3000억 원, 네덜란드 알스미어 화훼조합은 1조2000억 원의 매출을 자랑한다. 이 농업 강소국들의 협동조합은 미국의 저가 농산물과 메이저의 독점에 맞서 고품질과 농민 주도 통합경영체로 자국 농업을 지켜 냈다. 안타깝게도 우리에게 이들과 견줄 만한 탄탄한 농식품 법인은 아직 없다. 2004년 세계 1000대 기업에 오른 115개의 식음료회사 중 국내 기업은 CJ가 유일하다. 29개 관련 기업을 올린 일본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 보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규모의 농협을 가진 나라치곤 형편없는 성적이 아닐까.

유럽의 강소국처럼 농민참여형 통합경영체를 구축할 수 있을지, 다국적 기업들의 횡포에 맞서 우리 농업을 스스로 지켜 낼 수 있을지 단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뉴질랜드가 시장 개방 후 10년 만에 ‘제스프리’와 낙농조합 ‘폰테라’ 등 세계적 품목조합을 육성함으로써 자국의 농산물 시장을 지키고 세계시장에 진출한 것은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희망의 메시지다. 물론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우리 농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꺼내 들어야 할 카드이기도 하다. 농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광역 브랜드화는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다. 농업현장에서 시도되는 광역 브랜드화와 같은 의미 있는 일이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농업인은 물론 국민 모두 응원을 보내야 할 것이다.

최영찬 서울대 지역정보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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