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바른 생활’ 스트레스

  • 입력 2007년 8월 14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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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자원부는 최근 대기업 윤리경영 담당 임원 40여 명이 모인 자리에서 환경 및 사회적 책임을 전략적으로 활용해 경쟁 우위를 창출하는 ‘지속가능한 기업’을 선정하는 ‘라벨링 제도(인증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이른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주문한 셈이다. 산자부의 이 같은 방침은 국제표준화기구(ISO)가 2009년 하반기(7∼12월)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에 대한 국제표준을 제정하기로 한 데 따른 것이다. CSR가 무역장벽으로 기능할 가능성이 있어 이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려는 뜻이라는 설명도 뒤따랐다.

하지만 상당수 기업은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사회적 책임’ 압박에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다.》

한 대기업의 윤리경영 담당 임원은 “선의(善意)의 취지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인증제 등을 도입해 기업을 지나치게 압박하는 것은 경영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면서 “CSR는 각 기업이 자율적으로 이행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 정부, “사회적 책임 다하라” 전방위 압박

13일 산자부와 재계에 따르면 산자부는 올해 하반기에 기업의 CSR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지속가능경영 확산 종합계획’을 마련하고 이를 내년 업무 계획안에 포함시킬 계획이다.

또 올해 11월에는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작성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대통령상과 산자부 장관상 등을 시상하고 모범 사례도 소개할 예정이다.

기업들은 정부의 이런 방침이 당장은 강제성이 없지만 장기적으로 정부가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에 대해서는 지속가능 보고서 제출을 의무화하는 등 관련 규정이 강화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는 기업들은 불이익을 받지 않을지, 보고서 작성이 또 다른 규제가 되지 않을지 노심초사하고 있다”며 “일부 기업은 관련 조직을 확대해 대처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른 부처도 경쟁적으로 기업을 압박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6월 기업의 사회 공헌 활동을 유도하기 위한 사회공헌정보센터를 설립했고 국가청렴위원회는 감사원과 법무부 등과 함께 기업투명성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있다.

○ “기업들 자체 노력도 필요”

올해 초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LG필립스LCD 등 국내 기업 28곳은 세계 300여 개 금융회사가 참여한 ‘탄소배출 정보공개 프로젝트(CDP)’로부터 탄소 배출 정보를 공개해 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기업의 사회적인 책임도 주요 투자 기준으로 삼는 해외 금융회사의 파워를 무시할 수 없는 만큼 해당 국내 기업들은 관련 정보를 모두 공개했다.

이처럼 해외 금융계에서는 CSR를 투자의 전제조건으로 하는 ‘사회책임투자(SRI)’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다. 미국의 SRI펀드 규모는 1995년 6390억 달러에서 2005년 2조2900억 달러로 4배 가까이 급증했고 미국 전체 펀드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2% 이상이다.

국내에서도 국민연금이 3000억 원 규모의 SRI펀드를 시범 운용하고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선진국 수준으로 늘릴 계획이다.

컨설팅업체인 에코프론티어 송인경 부장은 “기업이 거액의 기부금을 내면서 이미지를 개선하는 시대는 지났다”며 “사회적인 책임을 다하는 것이 기업 활동을 위해 필수적이기 때문에 기업들의 자체 노력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한 재계 관계자는 “사회적 책임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도 이와 관련한 각종 규제가 생기고 자료 제출 요구가 이어지면 기업 활동에 되레 부담이 될 것을 우려하는 기업도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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