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업계 ‘안철수 신드롬’

  • 입력 2007년 8월 10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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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수 NHN 공동 창업자 “후배 육성 위해 퇴진…” 권도균 이니시스 설립자 “공부하러 미국으로…”

최근 자신이 공동 창업한 NHN을 떠나기로 한 김범수 전 NHN 대표이사는 “안철수연구소의 안철수 이사회 의장과 같은 길을 가겠다”는 인사말을 회사에 남겼다.

그는 “안 의장이 언론 인터뷰에서 ‘학업을 마친 뒤 벤처기업의 최고학습책임자(CLO·Chief Learning Officer)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한 것을 보며 나 역시 같은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앞으로 NHN 비상임 이사를 제외한 모든 직위를 버리고 후배 벤처 기업인을 육성하겠다는 포부도 피력했다.

○‘의미 있는 퇴장’과 새로운 도전

최근 자신의 분신(分身)과도 같은 기업에서 스스로 물러난 뒤 다른 의미 있는 일을 찾아 나서는 벤처기업인이 잇따르고 있다. 안 의장이 창업 10년 만인 2005년 3월 안철수연구소 대표이사직을 훌훌 털어 버리고 미국 유학이라는 제2의 인생을 시작한 것을 본받는다고 해서 ‘안철수 신드롬’이라고도 불린다.

1998년 ‘이니시스’를 창업해 코스닥시장에서 시가총액 580억 원의 회사로 키워 낸 권도균 이니시스 이사회 의장도 전문경영인에게 회사를 맡긴 뒤 최근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로 경영을 배우러 떠났다. 엔지니어 출신인 그는 “단지 배움에 대한 욕구 때문”이라고 유학 배경을 설명했다.

다른 벤처 창업자들도 이런 움직임에 영향을 받고 있다.

시가총액 2000억 원대의 회사를 운영하는 한 벤처기업 사장은 “솔직히 긴장의 연속인 회사 경영을 떠나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싶은 마음이 많이 든다”며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빌 게이츠 회장과 같은 모델을 닮고 싶다”고 털어놓았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성공한 창업자라도 요즘은 과거와 달리 기업이 자기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끊임없는 확장이 자신에게 큰 의미가 없을 수 있다”며 “창업자 자신에게 의미 있는 새로운 가치를 찾기 위해 삶의 재구성을 희망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개인의 리더십보다는 시스템 경영

‘안철수 신드롬’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투자자들의 반발이다.

이재웅 다음커뮤니케이션 사장은 2000년 “게이츠 회장처럼 한 걸음 현업에서 물러나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싶지만 투자자들이 용납하지 않는다. 회사 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이 이유였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하지만 몇 년 사이 상황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스타 창업자의 이름값이 벤처의 가치를 대표했지만 이제는 전문경영인 중심의 시스템 경영을 높이 사는 등 벤처기업에 대한 인식이 점차 바뀌고 있다.

김범수 씨와 함께 NHN을 공동 창업한 이해진 씨가 이 회사 대표이사를 맡는 대신 최고전략책임자(CSO)를 자임하며 검색 기술 개발에 주력하는 경우나 김정주 넥슨 창업자가 지난해부터 넥슨홀딩스 대표로 물러나며 ‘은둔 경영’을 벌이는 것도 이 같은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김용석 기자 nex@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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