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발유값 엎친데 ‘옥수수 쇼크’ 덮치나

  • 입력 2007년 6월 20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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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상승에 곡물 이용 대체에너지 개발 붐

바이오에탄올 원료 옥수수값 올 62% 폭등

수입 많은 한국도 식품-사료값 덩달아 올라

《‘옥수수 쇼크’가 지구촌 경제를 강타하고 있다. 국제 유가가 오르자 미국과 남미, 중국 등 세계 각국이 옥수수를 대체에너지의 원료로 쓰면서 옥수수는 물론 다른 곡물 가격도 급등하고 있다. 중동의 석유 수출국들은 이에 자극받아 원유 생산을 줄이려는 움직임을 보여 국제 유가가 다시 오르는 악순환이 나타나고 있다. 에너지 등 자원 빈국(貧國)이면서 농산물 수입국인 한국은 곡물과 원유 가격 동반 상승의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도 나온다.》

○ 곡물 값-유가 동반 상승 악순환

19일 농림부 등에 따르면 한국이 주로 수입하는 미국산 옥수수 가격은 지난해 평균 t당 88달러에서 올해 5월 중 143달러로 62.5% 올랐다. 한국의 지난해 옥수수 수입량은 930만 t으로 일본에 이어 세계 2위다.

옥수수 가격이 급등한 것은 이 곡물이 대체에너지인 바이오에탄올의 원료로 쓰이기 때문이다.

올해 미국에서 에탄올 생산에 쓰이는 옥수수는 약 8000만 t으로 미국 내 생산량 3억300만 t의 26%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연합(EU)과 중국 등도 곡물을 이용한 대체에너지 생산에 앞 다퉈 나서고 있다.

각국이 옥수수 재배에 적극 나서면서 상대적으로 재배 면적이 줄어든 밀, 보리, 콩 등의 국제 가격도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이에 대해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최근 “석유 수요가 안정적이지 않다고 판단되면 석유 생산량을 늘리려는 계획을 재고(再考)할 것”이라며 “(우리가 원유 생산량을 줄이면) 유가는 천정부지로 뛰어오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곡물 가격과 유가의 동반 상승이라는 ‘쌍둥이 인플레이션’은 한국 경제를 위협하는 주요 대외변수로 떠올랐다. 국토도 비좁고 에너지나 식량의 해외 의존도가 크기 때문에 대처할 방법도 마땅치 않다.

오문석 LG경제연구원 상무는 “곡물과 원유를 모두 수입하는 한국은 양쪽으로 압박을 받게 될 것”이라며 “이미 인플레이션 압력이 큰데 옥수수 쇼크가 물가 상승을 부채질하면 금리 인상으로 이어져 경기 회복을 늦출 수 있다”고 말했다.

○ 한정된 땅 두고 식량-에너지 경합

과거엔 먹을거리는 농경지에서, 에너지는 유전이나 탄광에서 생산하면 됐다. 하지만 기존의 에너지원(源)이 점차 고갈되면서 세계 각국은 농경지에서 대체에너지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정된 땅을 두고 식량과 에너지가 경합하는 유례없는 상황이 온 것이다.

석유 파동, 곡물 파동 등 자원 위기는 현대사에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모두 기상 이변이나 국제정치 상황 등 일시적 요인으로 절대 공급량이 줄어 생긴 현상이었을 뿐, 요즘처럼 수요의 급격한 증가가 원인이었던 적은 없었다.

성명환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바이오에탄올 열풍에, 경제성장 속도가 빠른 중국 인도의 수십 억 인구가 최근 축산물 소비를 늘리면서 새로운 농산물 수요가 대량으로 생기고 있다”며 “이런 현상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미 농무부에 따르면 세계의 곡물 재고량은 올해(양곡연도 기준·2006년 6월∼2007년 5월) 3억2000만 t으로 1981년 이후 최저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 곡물 파동 국내 영향 본격화

CJ는 지난해 12월 밀가루 가격을 7% 인상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국제 곡물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는 데다 유가 상승으로 운송비 부담도 늘어 어쩔 수 없이 값을 올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한국 소비자에 대한 곡물 파동의 영향이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대상㈜도 올해 3월 옥수수를 원료로 만드는 전분 가격을 10% 이상 올렸고, 농심도 같은 시기에 상당수 라면 값을 50∼100원 인상했다.

곡물 파동의 여파는 한국 축산물의 가격 경쟁력까지 잠식할 태세다.

농림부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소, 돼지, 닭 등 가축에게 먹이는 사료 값이 평균 5∼6% 오르더니 올 5월에도 다시 5∼8% 뛰었다.

농림부 당국자는 “지난해 말부터 사료 원료인 옥수수 가격이 계속 오르다 보니 사료업계에서도 (가격 인상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의견”이라고 말했다.

○ 관세 인하 등 효과는 제한적

한국 정부도 이 같은 흐름을 주시하고 있다.

정부는 최근 가공용 옥수수와 대두 등 일부 수입 농산물에 대한 관세를 한시적으로 인하하고 나름대로 대체에너지 개발에 착수하는 등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런 처방은 단기적이어서 그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많은 전문가들은 비좁은 땅에서 식량과 에너지를 모두 확보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국내 기업이 요즘 해외 유전 개발을 하듯 이참에 ‘해외 농장’ 개발에도 나서야 한다는 뜻이다.

민승규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제2의 녹색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한 곡물 값은 계속 오를 것”이라며 “연해주 등 땅값과 인건비가 싼 해외로 나가 곡물을 재배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때가 됐다”고 주장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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