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경제읽기] 모토로라, 방심의 교훈

  • 입력 2007년 5월 29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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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6월 취재 때문에 미국 시카고에 있는 휴대전화 업체 모토로라의 본사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당시 모토로라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삼성전자가 맹렬하게 추격해 오면서 휴대전화 세계 시장에서 2위 자리까지 위협받을 정도였다.

1990년대 중반 노키아에 1위 자리를 물려준 뒤 매출액에선 삼성전자에 뒤처지는 일도 있었다. 휴대전화를 처음 선보인 모토로라로선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그런 모토로라가 2004년 12월 기적을 만들어 냈다. 당시로선 가장 두께가 얇은 레이저폰을 선보인 것. 비싼 가격을 책정했지만 세계적으로 1000만 대가 팔려 나갔다.

레이저폰 광풍이 불면서 생산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일도 생겼다. 3위 업체인 삼성전자와의 격차는 벌리고 1위 업체인 노키아와의 격차는 좁혔다. 모토로라 세상이 멀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모토로라는 최근 올해 1분기(1∼3월) 실적이 1억8000만 달러(약 1700억 원) 적자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3500명을 정리해고하겠다는 방침도 발표했다. 실적이 악화되면서 주가도 지난해 10월 이후 40% 가까이 하락했다.

기업사냥꾼인 칼 아이칸은 모토로라 주식을 2.9% 매입한 뒤 “회사 전략이 잘못됐다”며 경영에 본격 관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레이저폰으로 화려한 부활을 꿈꾸던 모토로라가 최근 고전하는 이유는 뭘까. 일각에선 지난해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레이저폰 가격을 대폭 낮춘 것을 이유로 거론한다. 가격 인하로 마진 감소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월스트리트저널은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분석을 내놓았다. 레이저폰의 성공이 지금 모토로라가 겪는 어려움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레이저폰이 너무 잘 팔리자 모토로라가 방심해서 다른 모델 개발에 상대적으로 소홀히 해 경쟁업체들과의 신제품 개발경쟁에서 밀렸다는 분석. 경영학에서 흔히 거론되는 ‘성공의 복수’인 셈이다.

그런 모토로라가 다시 반격을 준비 중이다. 레이저폰보다 더욱 얇고 기능이 풍부한 레이저스퀘어드를 곧 시장에 내놓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정보기술(IT)업계에선 현재 아무리 잘나가더라도 한순간 방심하면 언제든지 밀릴 수 있고, 또 줄곧 고전하다가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내놓으면 일어설 수 있다고 한다. 모토로라의 부침이 보여 주는 교훈이다.

공종식=뉴욕 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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