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권남훈]획일적 지주회사 전환 바람직한가

  • 입력 2007년 5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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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권오승 공정거래위원장은 “삼성그룹이 지배구조를 지주회사 형태로 바꾸는 모범을 보여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삼성과 현대·기아자동차에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표현까지 쓰면서 지주회사 전환을 촉구한 데 이어 두 번째다. 경제검찰이라고도 불리는 정부조직의 수장이 특정 기업을 지목하는 부담을 무릅쓰고 이런 발언을 계속하는 이유는 삼성에 대한 관심과 함께 지주회사 전환 필요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삼성은 한국의 대표적 기업이다. 몇 년 전 삼성이 소니를 추월하는 세계적 기업으로 우뚝 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국민이라면 누구나 벅찬 감동을 느꼈을 것이다. 삼성이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소니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종업원이나 주주가 아닌 사람도 삼성에 관심을 갖고 외형적으로나 내적으로도 최고의 기업이 되기를 요구하는 마음이 든다.

필자는 삼성에 대한 기대에는 공감하지만 지주회사 전환에 대한 신념에는 의구심이 든다. 지주회사는 주식 소유를 통한 다른 기업 지배를 주된 사업으로 하는 회사이다. 구조조정이나 경영관리에 장점이 있지만 적은 자본으로 여러 기업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할 수 있어 오히려 경제력 집중을 우려하는 이들은 반대해 왔다. 미국이 1920년대 전력과 가스부문 지주회사를 규제하고, 일본이 1997년까지 지주회사를 금지하고, 한국에서 1999년까지 지주회사를 금지한 이유는 모두 같다.

따라서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고 소유권과 지배권의 괴리를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는 공정위가 지주회사를 대안으로 미는 모습은 참으로 아이러니다. 지주회사는 공정위가 해소를 지상과제로 삼는 환상형 순환출자 구조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공정위 쪽에서 본다면 환상형 순환출자 구조를 최악으로 여기기 때문에 소유지배 괴리가 덜하고 구조가 단순한 지주회사를 차악으로 선택했을 수 있다.

지주회사로의 전환은 바람직한 대안이 아니다. 순환출자 자체를 죄악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는 지배주주가 소수지분을 통해 그룹 전체를 통제하는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 한국에서 순환출자 구조의 심화는 취약한 경영권 방어제도, 50%에 이르는 높은 상속세율, 외환위기 이후 부채비율을 급속히 낮추어야 했던 역사적 배경과 깊은 관련이 있다. 순환출자든 지주회사든 핵심은 소수 지배구조를 인정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소수 지배구조는 세계 각국에 보편화된 현상이다.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 그래도 한 자릿수의 지분으로 그룹을 지배하는 현상은 너무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도요타의 창업주 후손은 2.5% 지분으로 안정적 경영권을 행사하면서도 일본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지배구조로 꼽힌다. 얼마 전 GM의 로버트 루츠 부회장도 GM이 도요타에 뒤처진 이유가 개인 기업처럼 운영되는 도요타의 지배구조 때문이라고 설파한 바 있다.

복잡한 그물망처럼 지분 구조가 얽힌 순환출자 구조가 주주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는지에 대해서는 검토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현 상황에서 지주회사로의 전환은 소수 지배를 좀 더 어렵게 하는 방법 이상의 의미를 찾기 어렵다. 기업은 이를 사업 영역 확장의 어려움으로 받아들이고 삼성 같은 기업은 아예 기존 사업을 대폭 매각해야만 전환이 가능하다. 주주든 삼성에 기대감을 갖는 일반 국민이든 이런 변화에 선뜻 동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오너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차원의 문제가 아님은 더욱 분명하다.

권남훈 건국대 교수·경제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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