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강 국내 미니기업]<4>‘핫러너’ 만드는 유도실업

  • 입력 2007년 4월 10일 02시 55분


코멘트
유도실업의 ‘핫러너’ 생산라인이 들어선 ‘사이버 팩터리’ 전경. 이 공장은 무인공작기계가 컴퓨터에 입력된 데이터에 따라 제품을 생산하는 무인생산시스템을 갖췄다. 화성=신원건  기자
유도실업의 ‘핫러너’ 생산라인이 들어선 ‘사이버 팩터리’ 전경. 이 공장은 무인공작기계가 컴퓨터에 입력된 데이터에 따라 제품을 생산하는 무인생산시스템을 갖췄다. 화성=신원건 기자
유도실업은 ‘집처럼 편안한 공장 환경’을 강조한다. 쾌적한 환경에서 최고의 생산성이 나온다는 것이다. 공장 사무실 바닥도 가정집 거실처럼 원목으로 깔아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화성=신원건  기자
유도실업은 ‘집처럼 편안한 공장 환경’을 강조한다. 쾌적한 환경에서 최고의 생산성이 나온다는 것이다. 공장 사무실 바닥도 가정집 거실처럼 원목으로 깔아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화성=신원건 기자
《올해 1월 경기 화성시 유도실업 본사. 일본 S사 관계자들이 이 회사의 공장을 방문해 구석구석을 살피고 돌아갔다. 이어 “우리 회사에 납품해도 좋다”고 연락해 왔다. 1996년 일본 시장에 진출한 지 11년 만이다. 한국 중소기업에 유독 인색했던 S사의 ‘벽’을 넘어선 것이다. 이번 취재를 위해 택시를 타고 유도실업 본사를 찾아갔을 때 택시 운전사는 기자에게“여기가 공장 맞아요?”라고 물었다. 공장 정문을 들어서자 은은한 클래식 음악이 들렸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본사와 공장 건물은 대학 기숙사처럼 말끔했다.》

○‘1000분의 5mm’ 오차 범위의 정교한 금속 가공과 설계가 핵심 기술

‘핫러너’는 플라스틱 제품의 대량 생산을 위한 핵심 부품. 금형에 화학수지를 녹인 원료를 공급하는 통로(러너) 역할을 하는데 원료가 굳지 않고 금형에 골고루 퍼지도록 열선을 내장해 ‘핫러너’로 불린다.

‘핫러너’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한 번에 찍어내는 플라스틱 제품의 수와 품질이 달라진다. 대당 가격은 100만 원부터 1억 원까지 다양하다.

이 회사의 김명환 기획조정실장은 “고객의 요구사항을 분석해 설계하고 정교하게 가공하는 능력이 핵심 기술”이라며 “우리는 제품이 아니라 기술을 파는 회사”라고 말했다.

유도실업의 연구개발비는 ‘무한대’다. 번 돈의 대부분은 생산설비와 연구개발에 투자한다는 원칙 때문이다.

2000년 150억 원을 들여 1800여 평의 무인생산시스템인 ‘사이버 팩터리’를 지었다. 공장 내부에 쇳가루와 기름때에 찌든 근로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컴퓨터로 작동되는 무인공작기계가 5cm 두께의 철판을 자르고 1000분의 5mm의 오차 범위로 금속을 정교하게 세공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 공장에서는 50명이 월 2000세트 정도의 제품을 생산한다.

직원들이 퇴근한 밤에도 기계 혼자 물건을 만들어 낸다. 고객의 주문을 자동설계 시스템이 설계하고, 설계된 도면 데이터에 따라 무인공작기계가 24시간 작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회사가 세계 최고의 생산성을 갖출 수 있는 이유다.○해외 판매가격이 국내의 2, 3배

유영희 유도실업 회장은 1980년대 초반 미국 잡지에 실린 ‘핫러너’ 기술을 보고 독학으로 공부해 국내 최초로 이 기술의 국산화에 성공했다.

사업 초기에는 외국 금형을 수입해 벌어들인 돈을 ‘핫러너’ 개발에 몽땅 투자했다. 유 회장이 국내 금형 전문가를 찾아가 관련 기술을 배우고 가정용 전기난로로 화학수지를 녹여가며 시제품을 만들었다. 내구성이 떨어져 반품을 당하거나 협력업체로부터 문전박대를 당하는 수모도 겪었다.

이제 해외에서 유도실업의 기술력을 더 알아주고 있다. 지난해 매출액은 530억 원. 2000년 211억 원의 갑절 이상으로 늘어난 것이다. 해외 수출 비중은 40%다.

국내 시장점유율은 70%, 아시아 시장에서는 1위다. 세계 시장점유율 30%로 캐나다의 1, 2위 업체를 턱밑에서 추격하고 있다. 은행 빚도 없다. 2000년 공장을 지으며 산업은행에서 빌린 80억 원도 3년 만에 다 갚았다.

이 회사는 1994년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해외 진출이 필수적이었다.

유도실업은 ‘고유 브랜드’와 ‘직영 판매체제’로 해외 시장에 승부수를 던졌다. 고객의 다양한 주문에 따라 제품을 설계해야 하고 판매 이후에도 기술 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기술과 서비스로 승부를 걸었다. 해외 경쟁업체보다 10% 이상 싸게 팔지 않는다는 원칙도 세웠다.

1996년 영국에서 처음으로 사원 1명, 창고 1개로 해외 현지법인을 열었다. 가격을 유지하고 기술 지원을 하려면 ‘직영 판매체제’가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일본 미국 브라질 인도 등 17개국에 현지 법인을 운영하고 있다.

유 회장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의 수출은 하지 않았고 가격을 깎는 업체와 거래하지 않았다”며 “해외 판매 가격이 국내보다 2, 3배 더 비싸지만 문제가 생기면 세계 어디든지 찾아가는 고객 서비스로 불만을 줄였다”고 말했다.

회사의 이익 대부분이 해외 수출에서 나온다는 게 이 회사 관계자의 얘기다.

○‘3무(無) 경영’이 혼(魂)을 녹이는 열정을 만든다

유도실업은 사람을 중시하는 ‘인격 경영’을 강조한다. 직원들에게 ‘혼(魂)을 녹이는 열정’을 요구한다. 대신 회사는 근로자에게 “집처럼 편안한 환경을 줘야 한다”는 게 유 회장의 소신.

공장 내에는 당구대, 탁구대, 헬스기구 등이 설치된 ‘피트니스센터’를 설치했다. 공장 사무실 바닥재도 가정집 거실처럼 원목으로 깔았다.

이 회사에 ‘블루칼라’는 없다. 근로자들은 모두 흰색 유니폼을 입는다. 옷깃은 ‘열정’을 뜻하는 빨간색이다. 직원들에게 자부심을 주기 위해 디자인한 것이다.

회사 직원 가운데 유 회장의 친인척이 없다. 능력만 있다면 지역과 학력을 차별하지 않겠다는 ‘3무 원칙’도 밝혔다. 60명의 직원을 거느린 생산부장은 31세의 전문대 출신. 입사 8년 만에 부장으로 승진했다.

성과가 나면 직원과 공유한다.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꾸준히 성과급을 주고 있다.

이 회사의 미래 고민도 인재에 있다. 지방 중소기업이라는 인식 때문에 고급 인력 채용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김충환 이사는 “급여나 작업 환경이 대기업에 뒤지지 않지만 지방에 있다는 이유로 우수 인재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화성=박 용 기자 parky@donga.com

● 유영희 회장의 ‘장인정신’

유도실업 유영희(60·사진) 회장. 신부(神父)를 꿈꾸며 신학을 전공했던 그에게 첨단 금형 기술은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1980년대 초에 독학으로 어렵사리 시제품을 만들어 국내 기업에 납품했지만 10번도 안 돼 작동을 멈췄다. 내구성이 문제였다.

“사업을 계속해야 할지 고민하던 중에 국내 산업박람회를 찾았습니다. 그곳에서 현대건설이 전시한 대형 발전기를 보고 펑펑 울었습니다. 작은 부품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해 쩔쩔매는 제 자신이 한심했습니다.”

유 회장은 다시 일어섰다. 금형 전문가를 쫓아다니며 제품의 불량률을 줄이는 데 성공했다. 치열한 ‘장인정신’은 결국 세계에서 인정받는 회사를 키워냈다. 그는 “중소기업이 전문기업으로 성공하려면 대기업과 달라야 한다”며 “최소의 투자로 제대로 된 물건을 만드는 혁신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도실업이 보유한 80여 개 특허 가운데 50여 개가 유 회장이 직접 낸 아이디어. 해외 출장길에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곧장 본사로 연락해 시제품 제작을 지시했다. 요즘도 자다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벌떡 일어난다고 했다.

그는 “중소기업의 최고경영자가 기술에 깊숙이 관여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며 “내가 잠잘 때 외국의 경쟁자는 기술을 개발한다고 생각하면 정신이 번쩍 든다”고 말했다.

“고객은 변하는데 똑같은 제품만 생산하는 게 ‘한 우물 경영’이 아닙니다. 우물 속에서 늘 새로운 물이 샘솟듯 고객의 수요에 맞춰 기술과 제품을 끊임없이 개발해야 합니다.”

그는 전문가는 “늘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세계 최고가 되기 위해 매출액 등 22개 경쟁 요소를 뽑아 1위 기업과 비교하고 있다. 외형은 물론 17개 이상의 분야에서 1위가 되는 게 유 회장의 꿈이다.

화성=박 용 기자 park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