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사전의 다음 페이지는?

  • 입력 2007년 4월 10일 02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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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 80년대 중고교를 다녔다면 영어사전을 씹어 먹는 친구가 한 명쯤은 있었을 것이다.

영어 단어를 다 외운 페이지를 쭉 찢어 입에 넣는 장면은 당시 청소년 드라마나 영화에도 종종 등장했다. 전자사전의 보급으로 이런 모습은 보기 힘들어졌다. 업계에 따르면 서울 지역

대학생의 전자사전 소유 비율은 약 55%, 고교생도 절반이나 된다. 중학생의 35%, 초등학생의 15%도 책장을 넘기는 아날로그 사전 대신 버튼을 누르는 전자사전을 이용한다고 한다.》

◇샤프전자 이상설 상무가 밝히는 진화사

샤프전자의 이상설(56) 디지털정보사업부 상무는 한국 전자사전 역사의 산증인 가운데 하나다. 그는 1990년부터 샤프전자의 마케팅 영업 현장을 지켜 왔다.

6일 서울 강서구 등촌3동 샤프전자 사무실에서 만난 이 상무는 “전자사전의 역사를 이해하려면 먼저 선배 격인 전자수첩의 흥망사부터 알아야 한다”며 말문을 열었다.

샤프전자는 1990년대 중반 세련된 이미지의 ‘가비앙’ 전자수첩 시리즈를 크게 히트시켰다. 그러나 휴대전화 보급률이 급격히 높아지면서 전자수첩의 ‘수첩’ 기능은 휴대전화에 흡수되고 말았다. 그 시기가 공교롭게도 1997년 외환위기 때와 겹쳐서 전자업계에서는 이를 ‘전자수첩의 IMF(국제통화기금) 시대’라고 부른다.

이 상무는 “결국 전자수첩은 ‘수첩’을 버리고 ‘사전’으로 탈바꿈하지 않으면 안 됐다”고 말했다. 1999년 10월 전자사전 PW-5000D가 탄생했다. 이 제품을 본 당시 대학생들의 반응은 “야∼, 억!”이란 두 마디로 집약됐다고 이 상무는 회고했다. 전자사전의 탁월한 기능에 “야∼” 하고 감탄했다가, 그 가격이 영어사전 6, 7권을 살 수 있는 20만 원대라는 데 “억!” 하고 기겁했다는 것이다.

비싼 가격 때문에 2년 넘게 고전하던 전자사전 업계의 숨통을 열어 준 것은 해외 어학연수생들. 이들은 미국에서 일본계 중국계 학생들이 강의실에서 전자사전을 이용하는 것을 보고 한국의 부모들에게 “전자사전 좀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그 후 한국 캠퍼스에도 전자사전 수요가 폭발했다.

그러나 요즘 전자사전의 ‘사전’이 예전 전자수첩의 ‘수첩’처럼 위협받고 있다.

청소년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는 휴대용멀티미디어플레이어(PMP)가 사전 기능까지 갖추고 있어 전자사전의 매력이 다소 떨어지고 있는 것.

이 상무는 “이제 전자사전은 오디오 북을 청취할 수 있고, 대학수학능력시험 동영상 강의까지 시청할 수 있는 ‘종합학습기기’로 한 단계 진화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샤프전자가 최근 선보인 전자사전 RD-CX200이 그 대표적 제품.

영어 사전을 찢어 먹는 풍경이 사라진 요즘 교실에서는 전자사전에 이어폰을 꽂고 동영상 강의를 들으며 자습하는 신풍속도가 나타나고 있다.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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