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시대, 글로벌 법률산업 ‘빅뱅’]<1>법률시장의 미국화

  • 입력 2007년 4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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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법률업무 온라인 대행인도 마하슈트라 주 뭄바이 시의 법률업무 아웃소싱 전문 로펌인 팬지어3 사무실. 80여 명의 변호사와 정보기술(IT) 엔지니어들이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 세계 곳곳의 다국적 기업에서 의뢰한 사건을 처리하고 있다.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의 비즈니스맨들이 퇴근하면서 이들에게 e메일로 자료를 보내면 이튿날 아침 출근해 완성된 양식의 법률 서류로 받아 볼 수 있다. 뭄바이=전지성  기자
美법률업무 온라인 대행
인도 마하슈트라 주 뭄바이 시의 법률업무 아웃소싱 전문 로펌인 팬지어3 사무실. 80여 명의 변호사와 정보기술(IT) 엔지니어들이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 세계 곳곳의 다국적 기업에서 의뢰한 사건을 처리하고 있다.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의 비즈니스맨들이 퇴근하면서 이들에게 e메일로 자료를 보내면 이튿날 아침 출근해 완성된 양식의 법률 서류로 받아 볼 수 있다. 뭄바이=전지성 기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종반전으로 치닫고 있던 지난달 21일 인도의 경제수도로 불리는 마하라슈트라 주 뭄바이 시의 캄바타(Cambata) 빌딩 3층.

유리문을 열고 들어서자 대학 도서관 열람실 같은 넓은 사무실에 줄지어 늘어선 책상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100평 규모의 사무실에 책상마다 5명씩, 80여 명이 컴퓨터 모니터 앞에 나란히 앉아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이들은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는 인도 변호사들과 정보기술(IT) 엔지니어들. 그러나 서울이나 홍콩의 변호사 사무실과는 달랐다. 비서실이나 접견실은 아예 없었다. 세계적으로 인도를 유명하게 만든 콜센터와 비슷한 광경이었다. 이 회사는 인도의 법률 업무 아웃소싱 전문 로펌인 ‘팬지어(Pangea)3’.

○ 다시 하나의 대륙을 꿈꾼다

“팬지어란 오래전 지구상에 하나뿐인 원시대륙의 이름인 판게아(Pangaea)에서 따왔습니다. 우리는 대중교통으로 이어진 세계를 ‘팬지어2’라 부르고 인터넷과 텔레커뮤니케이션으로 이어진 세계를 ‘팬지어3’라 부릅니다. ‘팬지어3’는 경제와 노동과 고객들이 하나의 토대로 연결된 세상입니다.”

로펌의 이름부터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21세기 글로벌 법률산업을 상징하고 있다.

산자이 캄라니 공동설립자 겸 대표변호사는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의 밀리언셀러인 ‘세계는 평평하다(The World Is Flat)’를 거론하며 “우리는 그가 말하는 (평평한) 세상을 지향한다”고 말했다.

팬지어3의 고객은 대부분 미국 유럽 일본의 다국적 기업들과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실리콘밸리)의 IT 기업들. 150개의 고객사 중에는 세계적 권위의 경제전문지인 포천이 선정한 세계 500대 기업에 포함된 기업이 25곳, 대형 로펌이 15곳이라고 한다.

2005년 12월 60명이던 팬지어3의 변호사는 현재 120명으로 늘었고 올해 말에는 300명을 넘어설 것이다.

아웃소싱 리서치 사이트인 프리즘닷컴(www.prismlegal.com)에 따르면 미국 국민의 이혼서류 등 단순 법률서류를 대행하는 업체부터 팬지어3 같은 복잡하고 민감한 업무를 대행할 수 있는 업체까지 모두 59개의 법률업무 아웃소싱 로펌이 인도에 있다.

여기에 속해 있는 변호사의 상당수는 미국 변호사 자격증을 갖고 있다. 국적만 인도일 뿐 미국법을 공부했고, 미국법을 직업의 수단으로 하면서 철저하게 미국법의 체제에 편입돼 활동하고 있다.

로라 루이스 오언스 변호사는 올 1월 15일자 내셔널 로 저널(The National Law Journal)에 기고한 ‘법률산업의 세계는 평평하다’는 글에서 “업무의 모든 단계에서 미국 변호사들은 IT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점점 커지는 글로벌 경쟁에 직면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애틀랜타에서 근무하는 그가 콜센터 같은 뭄바이의 로펌에서 일하는 인도 변호사들을 경쟁 상대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법률산업에는 ‘국경’이라는 개념이 사라진 지 오래다.

○ 글로벌 스탠더드로 자리 잡은 미국법

한미 FTA 협상에서 미국 측은 분쟁 발생 시 미국법이 토대가 되는 국제 중재로 해결할 것을 명문화하자고 요구했다. 우리는 이를 그대로 수용했다.

일각에서는 이를 이번 FTA 합의사항 중 최대 독소조항이라고 비난하지만,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 기업들은 투자 유치와 국제시장 진출을 위해 미국법을 준거로 수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세계 법률시장은 철저하게 미국계가 장악하면서 미국법이 점차 글로벌 스탠더드로 자리 잡는 추세가 확연해지기 때문이다. 미국법이 바로 국제 거래 기준이 돼 버렸고, 미국 법정이 바로 국제 법정인 것이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세계 법률시장은 영미계와 독일계가 양분해 왔으나, 최근 독일계는 퇴조하고 미국계가 우위를 점하고 있다. 세계 100대 로펌 중에 미국계가 76개사, 영국계가 16개사라는 사실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호주계(5개)와 캐나다계(1개)까지 합치면 영미계 로펌이 세계시장을 거의 장악하고 있는 셈.

스티븐 마크 국제법학회 호주지회장은 “영어, 달러화에 이어 미국법이 글로벌화의 세 번째 축으로 부상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글로벌 기업들이 각종 법률자문과 분쟁 해결의 준거로 미국법을 활용한 데 따른 것이다. 위험관리와 편의를 위해 영어로 표현되면서도 기업 친화적인 미국법을 글로벌 스탠더드로 채택한 결과다. 일례로 국제금융시장의 단일 기준은 다름 아닌 뉴욕주법이다.

여기에는 글로벌 기업과 뉴욕 월가의 로펌들 간의 오랜 공생관계도 작용하고 있다. 모건스탠리사의 경우 ‘데이비스 포크’ 로펌과 120년이 넘는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 문재완(법학) 교수는 “다국적 기업의 성장과 확산은 미국법의 지배력을 훨씬 적극적으로 보여 준다”고 말한다. 다국적 기업의 세계적인 확산은 진정한 의미의 세계화라기보다는 결국 미국식 게임의 규칙을 좀 더 넓게 확산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얘기다.

경희대 이재협(법학) 교수는 “법의 글로벌화는 거꾸로 세계 경제법의 질서가 미국법 중심으로 단일화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말했다.

뭄바이=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세계 어디의 고객이든 최고의 법률서비스”▼

“예전에 미국 뉴욕의 글로벌 기업들은 변호사를 찾을 때 얼마나 가까이 있는가를 중시했다. 그러나 인터넷과 정보통신의 발달로 세계 어디의 고객이건 최고의 변호사를 최적의 비용으로 고용할 수 있게 됐다.”

인도 뭄바이에 있는 로펌 ‘팬지어3’의 산자이 캄라니(사진) 대표변호사는 팬지어3가 세계의 기업들에 영어가 완벽하고 고용 비용이 저렴한 인도 변호사들을 선택할 기회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그는 뉴욕의 세계적 컨설팅업체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에서 시니어 매니저를 지냈다. 뉴욕에서 미국 글로벌 기업들의 인도 관련 비즈니스를 관리했지만, 인도에 돌아와서는 그들의 글로벌 비즈니스를 돕는 셈.

캄라니 대표는 “고객사들을 알려 줄 수 없다”고 했지만 “세계 5대 전자회사 중 두 곳, 5대 컴퓨터 회사 중 두 곳, 5대 인터넷 서비스 회사 중 두 곳이 고객”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우리는 기업들이 비용 부담 때문에 못했던 일들을 가능하게 해 준다”며 법률산업이 이제는 국경을 초월한 하나의 시장임을 자세히 설명했다.

“뉴욕에 있는 로펌이 하나의 특허를 등록할 때 3만 달러를 받는다고 해 보자. 30개의 특허를 등록해야 할 회사가 30만 달러밖에 예산이 없다면 나머지 20개의 특허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는 특허 신청 한 건을 6000달러에 처리해 준다.”

캄라니 대표는 “나머지 12만 달러를 다른 용도로 사용해 성장한 기업은 당연히 더 많은 법률서비스를 요구할 것”이라며 “결국 우리는 시장 규모의 확대에 기여한다”고 자랑했다.

그는 “한국의 삼성 같은 글로벌 기업도 우리의 특허 신청 서비스와 기업 전담 서비스를 이용하면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뭄바이=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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