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심각하다… 삼성만이 아닌 나라 전체의 문제”

  • 입력 2007년 3월 10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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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인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삼성 및 한국 경제에 대한 위기감이 간단치 않은 것 같다.

이 회장은 9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삼성그룹의 간판 계열사인 삼성전자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한국 경제의 앞날에 대한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심각하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4∼6년 뒤에는 아주 혼란스러운 상황이 올 것”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했다.

직접적인 기업 경영과 관련 없는 사안에 대해서는 극도로 말을 아끼던 그동안의 모습과 달리 작심한듯 위기감을 털어놓은 인상마저 주었다. 1월 25일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 회의에서 한국을 중국과 일본 사이에 낀 나라로 표현한 ‘샌드위치론’을 제기한 데 이어 약 한 달 반 만에 더 강도 높은 표현으로 나온 이 회장의 우려는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 이 회장이 제시한 ‘위기론’의 배경

이 회장의 발언은 한국 경제와 삼성의 현주소가 결코 간단치 않은 상황에 놓여 있다는 인식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우리 경제는 최근 원화가치 강세(원화환율 하락), 원유 및 원자재 가격 상승, 내수 침체 등의 악재에 싸여 있다. 여기에 몇 년 동안 정치사회적 분위기마저 기업 경영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기업과 기업인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쪽으로 기울면서 경제의 성장엔진이 급속히 식어가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잃어버린 10년’을 딛고 다시 살아난 일본 경제와 무서운 속도로 달려가고 있는 중국 경제 사이에서 한국 경제가 설 땅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도 “안팎에서 밀려오는 도전과 변화의 파고 속에서 영원한 1등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삼성도 예외일 수 없고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면 정상의 발치에서 주저앉을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실제로 삼성그룹은 2004년 이후 성장세가 두드러지게 약화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삼성그룹 전체의 매출액은 2004년 135조 원, 2005년 144조 원, 2006년 141조 원 등으로 성장세가 정체되고 있다.

대표 계열사인 삼성전자의 경우 주력 업종들의 성장이 정체 상태에 빠져 있다. 휴대전화는 노키아, 모토로라와의 격차를 좀처럼 좁히지 못하고 있다. 반도체 사업도 낸드플래시 가격 급락 등으로 수익률이 떨어지고 있고 경쟁업체들의 추격이 거세다.

생활가전 분야는 수년째 만성적인 적자의 늪에 허덕이고 있다.

○ 자동차 철강 조선 등도 ‘빨간 불’

전자업종 외에 그동안 한국 경제를 이끌어 온 자동차 철강 조선 등 한국의 간판업종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는 원화가치 상승과 노조 문제 등으로 수익률이 떨어지고 미국 등 주력시장에서 판매가 급감하고 있다.

지난해 7월 4만7205대였던 현대차의 미국 내 월간 판매량은 올 1월에는 2만7721대로 6개월 만에 41% 하락했다. 기아자동차는 지난해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 이후 8년 만에 처음으로 적자를 냈다.

철강과 조선산업은 중국의 거센 추격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해 국내에 수입된 중국산 철강은 사상 처음으로 1000만 t을 넘었다. 국내 상장 7개 철강사의 영업이익률은 2005년만 해도 20%를 넘었지만 지난해 13.5%로 추락했다. 중국 조선업체들은 벌크선과 중소형 유조선 등 일부 선종에서 세계 수주량의 절반 이상을 수주하고 있다.

신치영 기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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