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왜 명품에 중독됐나

  • 입력 2007년 3월 7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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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39.1%가 고가의 해외 유명 브랜드 제품을 구매한 경험이 있는 나라,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브랜드의 시계가 ‘180년 전통의 명품시계’로 둔갑해 엄청난 가격에 팔리는 나라….

사치품에 중독된 21세기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이런 사치품을 사들이는 유행심리와 이를 조장하는 사회구조에는 어떤 요소들이 작용하고 있을까. 김난도(소비자학) 서울대 교수의 ‘사치의 나라-럭셔리 코리아’(미래의 창)는 바로 여기에 렌즈를 들이댄 책이다.

김 교수는 이 책에서 한국의 사치 브랜드 애호가 12명에 대한 심층 면접을 바탕으로 ‘과시’와 ‘위신’을 기준으로 사치품 소비자의 유형을 분석한 경영학자 비그너론과 존슨의 모델을 발전시켜 한국형 사치품 소비자 유형 분석을 시도했다. 그는 사치품 소비의 심리적 동인을 토대로 과시형, 질시형, 환상형, 동조형 등 4개 유형을 추출했다.

과시형은 ‘어중이떠중이와 동일시될 수 없다’는 선민의식에 한국인 특유의 체면의식 서열의식이 더해진 경우다. 질시형은 ‘나라고 못 할쏘냐’라는 선망의식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한국적 평등의식이 결합한 경우다. 환상형은 현재와 다른 나, 근사한 나에 대한 변신의 욕망을 사치품에 투사한 경우로 여기서 사치품은 초라한 모습을 감춰 주는 갑옷의 역할을 한다. 동조형은 남들이 하니까, 뒤처지거나 따돌림 당해선 안 된다는 불안의식의 산물로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한국 특유의 집단문화가 부채질한 경우다.

이 책에 따르면 한국의 ‘명품’ 마케팅업계에선 사치품의 고객을 전통부자(Old Money), 신흥부자(New Money), 가짜부자(Fake Money)로 분류한다. 전통부자는 근면 검소한 생활 태도로 장기간에 걸쳐 부를 축적한 이들이고 신흥부자는 전통부자의 2세나 졸부를 뜻하는데 상대적으로 브랜드에 대한 지식과 이해(brand literacy)가 높아 사치품 마케팅의 주고객이 되는 이들이다. 가짜부자는 부자도 아니면서 신흥부자의 소비를 흉내 내는 20, 30대를 중심으로 평소 점찍어 둔 하나의 물건을 구입하는 ‘일품 명품주의자’들이다.

김 교수는 4개 유형 중 과시형만 신흥부자에 해당하고 나머지 3개 유형은 모두 가짜부자에 해당한다고 구별했다. 그는 이 중 질시형은 열등감이 강한 중산층, 환상형은 나르시시즘에 빠진 채 화려한 변신을 꿈꾸는 젊은이, 그중에서도 특히 유흥업 종사자, 동조형은 자아가 발달하지 않은 상태에서 유행에 민감한 청소년들에게서 많이 발견된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이런 한국의 사치품 소비문화를 인간의 본성(구별 짓기의 욕망)으로 보기보다 소비사회의 물질문화가 길러낸 소산으로 봐야 한다고 역설했다. ‘럭셔리 코리아’야말로 부유층은 있어도 상류층은 없는 압축성장의 문화적 토양에서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소비가 미덕’이라는 소비 활성화 정책의 비료를 받고 이상 증식된 산물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또 사회적 부가 편중될수록 가진 계층의 과시 욕망과 가지지 못한 계층의 추종 욕망이 더 커진다는 점에서 과소비는 개인이나 계층의 도덕성만으로 해소할 수 없는 국가적 문제라고 지적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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