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명품도 아닌데…백화점 터줏대감 ‘이름 석 자’의 힘

  • 입력 2007년 2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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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2층 여성의류 매장에는 ‘특별한 사람들’이 주로 입는 것으로 알려진 국내 패션 디자이너들의 의류 브랜드가 적지 않게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은 이광희, 손정완처럼 주로 디자이너 ‘선생님’들의 이름을 직접 따 ‘선생님 부티크’로 불리기도 한다.

이 ‘선생님 부티크’는 여러 차례 위기를 겪었다. 대중적인 국내 의류 브랜드들이 치고 올라올 때에는 젊은 고객들을 빼앗기면서, 세계적인 명품(名品) 디자이너 브랜드가 몰려올 때에는 40, 50대 부유층 고객을 빼앗기면서 위기를 맞았다.

디자이너 간의 경쟁도 치열해 한순간 주류에서 멀어지면 순식간에 정상에서 밀려나기 일쑤였다. 이 때문에 디자이너들은 ‘성공의 상징’인 백화점에 자리를 잡아도 안심할 수 없었다. 6개월이나 1년 만에 찾아오는 매장 개편 때 자리를 내주면 재기하기가 어려웠기 때문.

그런데 이런 격랑 속에서 국내 일류 백화점 의류 매장 자리를 수십 년 동안 지킨 장수 브랜드들이 있다. 이들은 급변하는 패션의 흐름 속에서 중심을 잃지 않고 살아남은 한국 고급 의류 산업의 산증인과도 같은 브랜드다.

○ 백화점 터줏대감

1979년 문을 연 롯데백화점 본점에는 마담포라 이원재 정호진 등 3개 브랜드가 28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롯데백화점이 매년 평균 2번 정도 매장 개편을 하니 이들 브랜드는 무려 56번쯤 매장 개편 심사를 이겨낸 터줏대감이다.

현대백화점 압구정 본점에는 1985년 개점 이래 22년간 밀려나지 않은 선생님 부티크가 5개 있다. 강희숙, 미스박, 미스지, 이광희, 이따리아나다.

숙녀복은 아니지만 국내 아동복 최초로 수입 원단을 사용한 모다까리나도 럭셔리풍 디자인을 고집하면서 22년째 자리를 지켰다. 자녀를 데리고 온 손님 중에는 “내가 어렸을 때 여기서 옷을 샀는데”라고 회고하는 이도 있다고 한다.

1990년 개점한 갤러리아백화점에는 손정완이 16년 6개월 동안 밀려나지 않은 유일의 브랜드로 남아 있다. 최고급 고객의 발길이 잦은 백화점의 특성상 손님의 취향이 까다로워 장수 브랜드가 많지 않다는 게 백화점 측 설명.

손정완은 1989년 브랜드를 만든 이래 현재 25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2005년에는 32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신세계백화점 본점에는 김연주, 브루다문 등 2개 브랜드가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 장수 브랜드의 비결은

당연한 말이겠지만 이들 장수 브랜드는 우선 고객 관리가 철저하다.

롯데백화점 여성정장 매입팀 임형열 바이어는 “성공한 장수 브랜드는 고정 고객을 상대로 초대회나 패션쇼를 자주 열고, 고객의 기념일을 챙기는 등 고정 고객 관리에 지극 정성을 보인다”고 말했다.

또 한 가지 특징은 이들 장수 브랜드가 의외로 유행을 잘 따르지 않는다는 점. 오히려 유행이 변할수록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집하는 방식으로 위기를 돌파할 때가 많다.

현대백화점 여성정장 바이어 이현재 차장은 “유행에 따라 브랜드의 고유한 스타일을 자주 바꾸면 결국 소비자에게 외면받는다”며 “변화하더라도 자신만의 주체성을 가지고 변화를 시도해야 초장수 브랜드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백화점 초장수 디자이너 브랜드
백화점기간브랜드
롯데백화점 본점28년마담포라 이원재 정호진
20년이동수 김연주 이상복 이따리아나 손석화 최연옥 루치아노최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22년강희숙 미스박 미스지 이광희 이따리아나
10년이상봉 박윤수 손정완
갤러리아백화점16년손정완
신세계백화점 본점20여 년김연주 브루다문
자료: 각 백화점

이완배 기자 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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