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하이닉스 하기’ 나쁜 나라

  • 입력 2007년 1월 24일 23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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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반도체 제조회사 하이닉스의 이천공장 증설과 관련해 “1라인 2라인 증설은 안 되고 2009년 착공하는 3라인은 검토해 보겠다”고 밝혔다. 하이닉스는 ‘1라인은 청주공장에, 2라인부터는 이천공장에 증설하겠다’는 수정안을 냈으나 이마저 거부당한 것이다.

하이닉스는 구리기판 웨이퍼를 생산할 계획인데 구리는 특정수질유해물질 19종 가운데 하나다. 문제는 구리 등 무기물에 대한 국내의 배출규제가 ‘총량규제’가 아닌 ‘성분규제’ 방식이어서 농도나 배출량을 따지지 않고 성분만 있으면 금지한다는 점이다.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등 선진국에서는 오염물질을 배출량에 따라 규제하지 ‘무조건 안 된다’는 식의 규제는 안 한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은 “구리는 사람에게도 필요한 원소로 하천수에서도 상당량 검출된다”며 “기준을 정해 규제해야 한다”고 밝혔다. 뒤늦게 환경부도 현행 규제의 불합리성을 인정하고 인체에 대한 영향 등을 조사해 기준을 만들기로 했다. 이 작업이 적어도 1∼2년 걸리기 때문에 내후년쯤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다.

하이닉스는 작년 초부터 이천공장 증설을 추진했다. 그런데도 환경부는 제도를 정비할 생각은 않다가 이제 와서 ‘판단할 수 없어 불허한다’고 내친 꼴이다. 정부의 무능, 무성의, 무대책 때문에 하이닉스는 ‘시간싸움(타이밍) 산업’이라는 반도체의 투자적기(適期)를 놓친 셈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연초에 하이닉스를 겨냥해 “앞으로 수도권 내 공장 증설은 예외적인 경우 외에는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자 박병원 재정경제부 차관은 바로 다음 날 “하이닉스 문제는 단순히 대기업 수도권 신증설 문제라기보다 상수원지역 환경규제의 문제”라고 말했다. 이천공장 투자허가를 안 해주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지역균형발전 논리가 군색하다 보니 수도권 주민의 상수원 보호를 핑계로 앞세웠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대통령이 안 된다니 허용해 줄 수 없다는 것이 솔직한 속내 아니었을까.

정부가 하이닉스 이천공장 증설을 진지하게 지원할 의사가 있었다면 불합리한 환경규제의 문제점을 부각하고 서둘러 고쳤어야 옳다. ‘기업 하기 좋은 나라’라는 현 정부의 선전은 ‘하이닉스 하기 나쁜 나라’라는 현실 앞에 빛을 잃었다. 이런 정부가 투자 촉진, 일자리 창출, 민생 개선을 외치니 국민이 냉소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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