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이는 대형 기업 매각 경제도 함께 꼬인다

  • 입력 2006년 11월 22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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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숭숭해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외환은행의 박모(40) 과장은 “요즘 은행 분위기가 외환위기 당시보다 더 안 좋다”고 말한다.

박 과장의 이런 생활은 벌써 3년째. 미국계 사모(私募)펀드 론스타가 2003년 대주주로 들어온 뒤 행장 교체와 잇따른 구조조정, 노조 투쟁 등으로 외환은행은 한시도 잠잠한 날이 없었다.

여기다 요즘 국민은행과의 매각 협상이 계속 늦춰지면서 은행 주인이 누가 될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박 과장은 “영업과 투쟁을 병행하다 보니 전부 지쳐 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은 외환은행만의 문제가 아니다.

현대건설, 대우조선해양 등 재계에서 손에 꼽히는 대형 기업들도 매각 일정이 줄줄이 내년 말로 연기될 것으로 보인다.

한번 매각이 이뤄지면 재계 판도까지 뒤흔들 만큼 규모가 큰 기업인 만큼 매각 일정이 흐릿해지면서 한국 경제에 큰 부담이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 줄줄이 내년 말로 연기될 듯

문제는 이들 기업의 매각 일정이 경제 논리가 아닌 정부, 외자(外資) 문제, 국민정서 등의 복합적인 이유로 계속 꼬이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건설은 범현대가(家)와 정부 관계 때문에 매각 일정이 차질을 빚고 있다.

당초 일정대로라면 벌써 채권단은 매각 주간사회사를 정했어야 했다. 하지만 채권은행인 한국산업은행이 ‘구(舊)사주’ 문제를 내세우며 브레이크를 걸었다.

부실 책임이 있는 현대가를 입찰에 참여시킬 수 있는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금융계에서는 “정부와 현대가의 불편한 관계 때문에 현 정부가 끝날 때까지 매각은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대우조선해양도 원래 내년 초면 매각 청사진이 나올 것으로 예상됐지만 최근 산은은 “내년 하반기에나 시작될 수 있을 것”이라며 한발 물러섰다.

중국 자본의 입찰을 막을 명분이 뚜렷하지 않다는 게 이유다. 국가 기간산업인 조선업을 넘겨줄 수 없다는 뜻이다.

하이닉스반도체도 주채권은행이 ‘자기 살길 바쁜’ 외환은행이라는 점 때문에 매각이 힘들어지고 있는 처지다. 여러 그룹에서 눈독을 들이는 대한통운, 대우인터내셔널도 몇 년째 시장에서 대기 중이다.

○ 한국 경제 부담 우려

매각이 지연되면 매각 당사자나 인수 희망자에게 엄청난 비용 부담이 될 뿐 아니라 외국 자본 유치에도 도움이 안 된다는 게 대체적인 견해다.

금융권에선 “요즘 외국인투자가들을 만나 보면 매각이 지연되는 상황에서 한국 투자를 머뭇거리게 된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얘기도 나온다.

물론 비오이하이디스나 쌍용자동차의 경우처럼 해외의 인수업체가 한국 기업의 단물만 빼먹는 ‘악성’ 인수합병(M&A)을 하는 것을 미리 막으려면 매각을 무조건 서두르지는 말아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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