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도록 일해 봤자…” 씁쓸한 월급쟁이들
대기업에 17년째 근무하고 있는 황모(44) 차장은 얼마 전 퇴직금 중간정산을 하며 받은 돈 1억 원으로 경기도에 땅을 샀다. 강북에 자기 소유의 아파트를 몇 년째 보유하고 있지만 집값 폭등은 남의 이야기다. 그는 “처음에는 공기 좋은 곳에 터를 잡았다고 위안했지만 요즘 강남에 집을 산 동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한숨만 난다”며 “노후 대비도 할 겸 혹시나 하는 마음에 땅을 사 뒀다”고 말했다.
반면 직장생활 6년째인 김모(33) 씨는 지난달 중순 서울 서초구 잠원동 17평형 아파트를 3억5000만 원을 주고 샀다. 부모님 도움과 은행 융자, 아내의 혼수 자금을 털어 사둔 이 집의 최근 호가가 4억5000만 원까지 오르자 표정 관리를 하느라 애를 먹고 있다.
외국계 회사에서 일하던 김모(35) 과장은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사 뒀던 아파트로 5억5000여만 원의 시세 차익을 챙긴 뒤 미련 없이 미국으로 이민 갔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의 저축’을 뛰어 넘는 세태는 직장인들의 일할 의욕을 앗아간다.
올해 3분기(7∼9월) 근로자의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342만3494원으로 참여정부 출범 첫해인 2003년 1분기(1∼3월)의 290만7487원에서 51만6007원(17.7%) 늘었다. 반면 서울 강남구 아파트의 평당 가격은 2003년 1월 첫째 주 1748만 원에서 11월 둘째 주 3397만 원으로 94.3%나 올랐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직장인들은 일손이 잡힐 리가 없다. 직장인 송모(31) 씨는 최근 서울 성동구 아파트와 경남 진주시의 아파트로 ‘짭짤한’ 수익을 올렸다. 송 씨는 “근무 시간에도 짬짬이 부동산 공부를 한 덕”이라며 “큰돈이 없어 주로 공동투자자를 모집해 투자한 뒤 이익을 나눠 가졌다”고 말했다.
한 대기업의 대리(33)는 “인터넷에 부동산 사이트를 즐겨찾기 해 두고 틈틈이 방문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에 다니다 아예 공인중개사 시험을 치르기 위해 그만둔 직원도 있다.
한국직업능력원 장홍근 박사는 “근무 시간에 재테크를 하는 행위는 직업윤리에 반할 뿐 아니라 사측과의 계약 위반”이라며 “직장에서 업무와 무관한 사적 이익을 추구하면 결국 그 부담은 회사와 사회가 지게 된다”고 우려했다.
○ 정부 고위층 이중태도 비판 봇물 터져
인터넷 포털 다음(www.daum.net)의 토론방인 ‘아고라’에는 이백만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 등 현 정부 고위 인사들을 비난하는 누리꾼의 분노가 넘치고 있다.
그동안 부동산 투기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해 온 이 수석이 정작 본인은 강남 아파트 투자로 벌써 10억 원가량의 차익을 올린 것이 국민의 분노를 폭발시켰다.
많은 누리꾼은 “이백만 수석님 대단하십니다. 이런 게 민주주의고 개혁입니까” “이 수석은 강남 집값 하락을 막기 위해 대출받아 집을 샀나요” “참여정부의 기만적인 부동산 정책” 등의 냉소적 댓글을 줄줄이 올리고 있다.
인터넷에서는 이른바 ‘버블 세븐’ 지역에 집을 가지고 있는 청와대 고위 공직자의 리스트가 확산되기도 했다.
LG경제연구원 송태정 부연구원은 “최근의 수도권 집값 확산으로 ‘강남 고립론’을 지지하던 근로자들까지 정부정책에 분노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그는 “정책 발표가 효과를 보려면 우선 정책이 신뢰를 얻어야 한다”며 “신뢰를 잃은 정부의 발표는 맞고 맞지 않고를 떠나 역효과를 낸다”고 말했다.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
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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