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제의 ‘구멍’ 배기량의 ‘함정’…이상한 특소세

  • 입력 2006년 11월 8일 03시 00분


코멘트
《가격이 2000만 원대인 국산 승용차에 붙는 세금이 4000만 원에 육박하는 외제 승용차보다 많다면? 특히 그 세금이 ‘사치품’으로 간주되는 고가 상품에 붙는 특별소비세(특소세)라면? 믿기 어렵지만 현실이다. 배기량 2000cc를 기준으로 각종 세율을 정한 한국의 자동차세금 구조가 만들어 낸 ‘배기량의 함정’이다.》

○ 차량 가격과 세금은 별개?

현대자동차의 인기 모델 쏘나타 F24S의 소비자 공급가격(소비자 판매가격에서 부가가치세를 뺀 것)은 2615만 원. 이 안에는 특소세 231만 원, 교육세 69만 원 등 300만 원의 세금이 포함된다. 공급가의 11.5%다.

반면 최근 젊은층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폴크스바겐 ‘파사트 2.0TDI 프리미엄’의 소비자 공급가격은 3825만 원이지만 이 차에 붙는 특소세와 교육세는 각각 130만 원과 39만 원으로 총 169만 원에 불과하다.

가격은 쏘나타보다 1000만 원 이상 비싸지만 특소세와 교육세만 놓고 보면 131만 원의 세금을 덜 낸다. 공급가격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4.4%에 그친다.

쏘나타에 붙는 특소세와 교육세는 가격이 2.5배(약 6381만 원)에 이르는 고급 승용차 ‘벤츠 E200K’의 세금(316만 원)과 엇비슷할 정도다.



○ 특소세 10%와 5% 사이

이런 모순은 현행 자동차 관련 세금 가운데 특소세가 배기량을 기준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특소세는 배기량 2000cc를 기준으로 세율이 크게 달라진다.

2000cc를 초과하는 차량은 공장도가격(수입차는 운송비 보험료 관세 포함)의 10%를 특소세로 내지만 2000cc 이하 차량은 5%만 부과되는 것. ‘특소세의 30%’인 교육세도 결과적으로 배기량에 크게 좌우되는 셈이다.

또 부가가치세와 차를 직접 구입할 때 내는 취득세 등록세 및 매입해야 하는 공채 역시 배기량 기준으로 결정된 소비자 공급가격을 기초로 산출되므로 싼 차가 더 많은 세금을 내는 모순은 더욱 커진다.

○ FTA서도 배기량 세제 논란

배기량 기준 세제가 관심의 초점이 된 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미국이 문제를 제기하면서다. 대형차가 많은 미국은 한국 시장에서 독일이나 일본 자동차 업계에 밀려 고전하는 게 한국의 배기량 기준 세제 때문이라며 이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부에선 미국의 주장을 완전히 수용할 수는 없더라도 기준이 되는 배기량을 조정하는 등 세제를 다소 손질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1977년 특소세법 제정 당시 12만 대에 불과하던 국내 자동차 보급 대수는 지난해 1500만 대 이상으로 급증하는 등 시대가 달라졌다는 것. 특히 2000cc를 넘는 중형차 보급이 최근 크게 늘고 있기 때문에 2000cc 초과 승용차를 ‘사치품’이라고 보는 건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산업연구원은 올해 초 ‘소비재산업의 수요구조 변화와 정책효과 분석방법’ 보고서에서 자동차 산업 발전과 국민후생 증대를 위해 자동차에 물리는 특소세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김창원 기자 changkim@donga.com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