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장벽넘기 100 대 1은 기본…금융권-공기업 ‘별따기’

  • 입력 2006년 10월 20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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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소재 대학을 졸업한 A 씨의 영어 토익 점수는 960점으로 상위권. A 씨는 올해 모 대기업 공채에 지원했다가 ‘서류전형’도 통과하지 못했다.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가진 B 씨와 중국어능력시험(HSK) 9급(고급) 자격을 가진 C 씨도 같은 일을 겪었다.

이 기업의 채용담당자는 “워낙 ‘조건’이 좋은 지원자가 많아 자격증이나 외국어 시험 성적의 변별력이 떨어진다”며 “비슷한 조건의 지원자 100명 이상이 서류전형을 통과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경제실정(失政)으로 저(低)성장이 장기화되면서 청년 취업난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19일 취업전문업체 커리어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 공채를 실시한 기업 중 75개사의 평균 ‘취업 경쟁률’은 92 대 1이다. 설문에 응한 기업은 대부분 직원 1000명 이상의 대기업이다.

조사대상기업의 43%(32개사)는 취업 경쟁률이 100 대 1을 넘었고 150 대 1이 넘는 기업도 12곳이나 됐다.

금융권과 공기업의 입사 경쟁률이 특히 높았다. 학력, 나이를 따지지 않는 ‘열린 채용’을 시행하는 외환은행은 행원 70명 모집에 1만1451명이 지원해 164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우리은행과 LIG손해보험도 각각 107 대 1, 105 대 1의 취업 경쟁률을 보였다.

10여 명을 모집하는 증권선물거래소는 1100여 명의 지원자가 몰렸다. 인천항만공사는 153 대 1, 한국전기안전공사가 148 대 1 등이었다. 전기안전공사 사무직은 4명 채용에 4265명이 지원해 1066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응시 기회를 2회로 제한하는 삼성그룹도 6.6 대 1의 경쟁률을 보여 그룹 공채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 100 대 1, 두산그룹 80 대 1, 한화그룹 70 대 1, 이수그룹 80 대 1, STX그룹 60 대 1 등의 취업 경쟁률을 보였다.

지원자들의 ‘수준’은 떨어뜨리기 아까울 정도로 높다. 외환은행 지원자 가운데 토익 900점 이상 고득점자가 1085명이나 됐고 증권투자상담사 선물거래상담사 금융자산관리사 등 고급 자격증 소지자도 2059명이었다.

지원자가 넘치자 기업들도 옥석을 구분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외환은행 인사담당자는 “추석 연휴에도 쉬지 않고 출근해 지원서류를 읽었다”고 털어놓았다.

극심한 취업난이 이어지자 정부도 올해 초에 내놨던 일자리 창출 목표치인 월평균 35만 명에 대해 ‘포기’를 선언했다.

권오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이날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정례 브리핑에서 “올해 1∼9월 월평균 30만 명 정도인 취업자 증가폭을 고려할 때 매월 35만 명 수준의 취업자 증가는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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